마지막 퍼즐 맞추기 2
윤 비서관은 언제나처럼 장 팀장이 내어놓을 대안을 기다리며 태연하게 커피 잔을 들었다.
역시 이번에도 윤 비서관의 예상은 적중했다.
“더 늦기 전에 통일화폐를 발행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참에 남북 양쪽의 중앙은행 기능들을 연방정부로 이양시켜서 대고려연방의 위상을 한층 더 강화시키는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실행의 단계를 한 단계 더 높이자는 말인데 본격적으로 실행계획 3으로 진입하자는 말인가?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닐까?”
“돌아가는 현장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작금의 시장 상황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게 우리의 내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시장은 그때가 무르익었다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화학적 결합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칫 시장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다가 연방과 민심이 서로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갈까 봐 오히려 그것이 걱정입니다,
민심의 바로미터인 시장을 믿고서 시장과 함께 보조를 맞추는 것이 정답일 것 같은데요”
“시장의 상황이 우리 내부의 지표다!
그래서 민심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옳은 말이긴 한데 말이야"
삼일특공대의 실무를 관장하던 장 팀장의 입에서 드디어 한반도실행계획의 제3단계를 주문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십 년의 유예기간을 거치는 동안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던 문제가 바로 통일화폐의 발행과 남북한 군대의 통합문제다.
어차피 어느 한쪽의 일방에 의한 통일이 아닌 바에는 화폐와 군대의 통합은 대단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통일의 마지막 종결 편이었다.
하지만 이 두 조각의 통합 과정에서 만에 하나 파열음이라도 발생한다면 수습이 불가능한 사태로 비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결하고자 했던 것인데 문제는 북쪽에서조차 북한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의 사용을 꺼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날 저녁 늦은 시각,
윤 비서관은 민 대통령의 업무가 끝날 때를 기다려 대통령 집무실을 찾았다.
민 대통령은 언제나처럼 윤 비서관을 집무실의 소파로 안내하여 편안하게 독대했다.
대통령은 마음이 편한 사람들과 대화할 땐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올려놓는 습관이 있었다.
오늘도 묵직한 금테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윤 비서관이 내게 독대를 신청하는 날에는 언제부턴가 긴장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또 무슨 굉장한 이야기로 날 놀랠킬까 하고요,
그래요, 이제는 놀랄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디 한번 들어봅시다!”
대통령은 가벼운 농담으로 윤 비서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오늘은 보고서 없이 그냥 제 의견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 통일 화폐의 발행을 서두르셔야겠습니다,
이 상태대로 북쪽의 경제를 더 방치하다가는 큰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북쪽지역의 장마당 어디에서도 이미 북한원화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경제만큼은 남쪽시스템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북쪽사람들의 심리가 이 같은 현상을 만든 것 같습니다,
이제 더는 화폐개혁을 미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의 정부가 존속되는 십 년의 유예기간 동안 충분히 예상된 문제였습니다만 생각이상으로 시장이 빨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민 대통령이 팔짱을 낀 채 소파 뒤로 등을 붙이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윤 비서관이 잘 봤어요,
우리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북쪽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문제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른 게 문젭니다,
윤 비서관의 지적대로 통일화폐를 발행한다면 일시적으로나마 북쪽의 상황을 호전시킬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임시방편이겠지요,
국민들의 경제활동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과학적으로 작동하는 심리현상이에요,
이렇게 된다면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 될 거라고 봐요,
그래서 마지막 두 조각의 퍼즐을 혼란 없이 끼워 보려고 십 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던 것인데…”
지금 민 대통령은 윤 비서관이 우려하는 바로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체재를 떠받치던 그나마의 경제 시스템이 무너진다면 이제 남는 것은 군대뿐이다.
곧 무너질 나라의 군대는 오합지졸로 변하기 마련인데 핵을 보유한 군부가 혼란에 빠진다면 대고려연방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같은 대통령의 염려를 모르지 않았던 윤 비서관이 부릅뜬 눈으로 대통령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대통령님! 차라리 한반도실행계획의 단계를 높이는 것을 고려해야 될 것 같습니다,
위험이 두려워서 시간을 지체하기보다는 속전속결 정공법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 연착륙을 유도하는 방책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두 조각을 말이지요?”
“십 년의 유예기간에 얽매이다간 그동안의 통일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화폐의 종속 현상이 길어진다면 필연적으로 대고려연방의 통일정신이라 할 수 있는 상호존중과 배려 평등 같은 가치들이 훼손될 터인데 최악의 상황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그래서 나머지 두 조각중 우선 한 조각이라도 먼저 끼워 맞추어서 예상되는 혼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말이지요?”
“네, 그것도 철저하게 상대의 자존심을 고려한 방식이어야 합니다!
다소간의 잡음이 예상된다 하더라도 남북한 동률의 화폐교환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통일화폐가 남북화합의 진정한 상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며칠 후 민 대통령은 연방정부청사로 사용 중인 평화의 집에서 정 위원장을 만났다.
연방대통령이 합석한 이날의 최고위급 회담에서 민 대통령은 통일화폐의 발행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경제문제는 우리 연방 국민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혼란이 발생한다면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금쯤 통일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위원장님과 연방대통령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단, 기존의 구권과 새로 발행될 통일화폐와의 교환가치는 남과 북이 동등하게 일대일로 한다는 전제입니다!”
최대한 북쪽을 배려하려는 민 대통령의 말에 연방대통령은 안도했지만 정 위원장은 머리만 끄덕일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연방대통령이 정 위원장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좀 이른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공평한 교환조건이라면 남북모두에 다 같이 이로울 것 같은데 위원장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갑자기 통일화폐 이야기가 등장하자 정 위원장으로서는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후 다시 특유의 미소 띤 얼굴을 회복한 정 위원장이 두 대통령을 번갈아서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두 분 대통령님들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근자에 들어 우리 조선화폐가 여기저기서 외면받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도 이 문제로 적잖이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경제만큼은 솔직히 우리가 남쪽에 비해서 초라한 것이 현실이다 보니 대책을 마련하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이럴 때 민 대통령님께서 먼저 통일화폐 말씀을 해주시니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사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우리 쪽에서 먼저 말하기가 좀 그랬는데 신구화폐의 교환조건에 대해서도 배려하여 주시겠다고 하니 우린 뭐 찬성입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정 위원장이 웃으면서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두 대통령도 함께 따라 웃으며 이 어려운 주제를 생각보다는 싱겁게 해결해 버렸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이미 내용적으로는 한국화폐가 북한화폐를 흡수해 버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단행하는 새로운 통일화폐의 발행은 시한부 생명의 북한정부로서도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조치가 되었다.
이 회의를 계기로 대고려연방을 이끌어가는 3인의 회합체를 언론에서는 연방최고회의라는 별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연방법에 명시된 공식적인 회의기구는 아니었지만 이후 그 위상은 자연스럽게 대고려연방의 실질적인 최고회의로 부상되어 갔다.
그야말로 지구촌을 뒤흔들었던 격동의 2030년은 의심의 여지없이 한반도가 그 중심에 있었다.
85년을 기다려온 대망의 통일위업도 달성했고 이제 이웃 일본정도는 미국이 감싸고만 돌지 않는다면 몇 번이고 주저앉힐 수 있는 넉넉한 국방력도 갖추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2030년의 마지막 태양은 그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