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42)

마지막 퍼즐 맞추기 3

by 맥도강

2031년 1월 1일을 기하여 연방정부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통일화폐가 전면적으로 통용되었다.

그동안 남북한의 중앙은행에서 발행되었던 구권과의 교환비율을 차등 없이 동등하게 교환하는 문제는 사실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남쪽사회 내부의 거센 비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직 뚝심 하나로 민 대통령이 밀어붙인 결과였다.


심지어 야당에서는 차기 연방대통령을 염두에 둔 민 대통령의 정치적인 술책이라고 까지 몰아붙였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되자 민 대통령은 연초 KBS로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시간을 이용하여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대고려연방은 경제 군사 문화 등 지금까지의 모든 차이를 극복함으로써 서서히 하나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남과 북에서 발행되었던 모든 구권은 일체의 차별 없이 신권과 동일한 가치로 교환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의 통일정신은 평등한 남과 북의 조화로운 공존으로서 우리 모두는 이제 똑같은 대고려연방의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대고려연방의 기치아래 마침내 한 식구가 되신 존경하고 사랑하는 팔천만 국민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내년 5월 9일까지인 저의 잔여 임기를 마친 이후엔 일체의 선출직에 나서지 않고 대고려연방의 평국민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정 위원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남쪽의 대표적인 보수 일간지에 실린 민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 기사를 읽고 있었다.

옆자리에 서있던 정숙을 돌아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다.

“독도전쟁이 끝나고 대북특사 편에 편지를 보내왔을 때 내가 뭐라고 답장을 보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당신을 믿어볼 테니까 내게 진심을 보여 달라고 했더랬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가 저이한테 낚였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정말 사심 하나 없이 민족통일의 여정을 투벅투벅 걸어가면서 굳이 날 보고 같이 가자고 손을 이끄는데 내가 어떻게 외면할 수 있었겠느냐 말이야!

너는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참여해야 될 사람이야,

민 대통령 같은 분을 보면서 배워 두는 게 좋을 거야!

얕은 수작이 아니라 진심으로 다가가는 사람은 말이야, 사실은 우리 인민들도 다 알아,

진심은 언제나 인민들의 지지를 받는 법이니까!”


이것으로 악화일로에 놓여있던 북쪽 다섯 개 주의 경제에도 숨통을 틔울 수 있게 되었다.

85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자유시장과 계획경제라는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하던 각기 다른 독립된 국가들이었다.

주변 강대국들의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두 독립국은 기어이 자신들의 힘으로 평화통일이라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기적을 만들 수 있었던 특단의 비밀병기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같은 민족을 포용하려는 민족정신이었다.

자신들 집단의 이익과 손해보다는 같은 민족이기에 통 크게 양보할 수 있다는 민족정신이 한반도 통일의 진정한 원동력이었다.


새롭게 태어난 대고려연방은 선진적인 어떤 롤모델이 있을 리 없었다.

오로지 대고려연방 특유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면서 세계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화폐발행의 방식에서도 세계는 떡하니 놀란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연방정부의 통일화폐는 지폐나 동전이 아닌 전자화폐로만 발행하여 통용되었다.

이것은 달러나 유로화 엔화 인민폐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결재수단으로써의 위상까지 고려한 대고려연방의 야심 찬 조치였다.

전자화폐를 시범적으로 사용하는 나라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화폐와 병행해서 사용하는 보조적인 통용수단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에 대고려연방은 세계 최초로 전면적인 전자화폐의 사용을 시작함으로써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 빅3 경제권에 진입하고자 하는 야심 찬 결의가 엿보였다.


통일화폐의 발행으로 일시적으로나마 북쪽 다섯 개 주의 경제에 숨통이 트이자 이 틈을 이용하여 정 위원장은 그동안 내밀하게 준비해 왔던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게 된다.

어차피 대고려연방의 탄생으로 북쪽 지역의 계획경제 시스템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 경쟁구조에 취약한 북쪽의 인민들이 향후 치열한 경쟁세상에서 생존하려면 최소한의 물적 토대가 필요했다.

이것을 위한 선제적인 조치가 전격적으로 단행됐다.

모든 집단농장과 국영기업을 소속 구성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가히 혁명적인 조치였다.

이것은 정 위원장이 아니고선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집단농장은 몇몇의 가족 단위를 묶어서 책임 생산하는 소규모의 가족경영들이미 정착되어 있었다.

가족단위로 구분하여 경작하던 해당 토지를 그 구성원들에게 지분등기의 형식으로 농장의 소유권을 넘겨주었다.

이후 집단농장의 향후 운명을 구성원들의 자율에 맡겨서 그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지만 북쪽 다섯 개 주에서 해산을 결의한 집단농장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 영농조합의 형태로 전환하여 집단농장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변화된 세상에 적응해 보려고 몸부림쳤다.


반면에 국영기업들은 모든 소속원들에게 공정하게 주식을 배분하여 그 직원들이 주인이 되는 종업원지주사의 형태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온실 속의 화초처럼 국가의 보호 속에 있던 국영기업들이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엄혹한 경쟁세상에서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국가로부터 배정받아 거주하던 주택도 자신들의 사유재산으로 등재되기 시작하여 적어도 북쪽 다섯 개 주에서는 무주택자가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그들은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그들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었지만 온실이 벗겨진 겨울한파의 위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오직 한 사람 정 위원장의 결단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탄탄한 권력기반을 소유한 그 자신의 왕국이었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양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스스로 내려놓았다.

인민들의 요구도 없었고 연방의 강요도 없었지만 자신의 왕국을 지탱하던 경제적인 기반들을 자신의 인민들에게 아낌없이 되돌려주었다.

절대 권력을 지닌 왕국의 주인이 그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스스로 내려놓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인류역사를 통틀어서 그 자신의 결단만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자가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선제적으로 결단을 단행하면서 이후 북쪽 다섯 개 주에서는 정 위원장에 대한 애잔한 마음들이 더욱 확산되었다.


남과 북이 통일되자 신년 해돋이의 명소들이 대폭적으로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명소는 단연 백두산의 최정상 장군봉이었다.

해돋이의 인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던 장군봉에는 역전의 미니탐험대원들도 끼어있었다.

통일화폐의 발행으로 어수선하던 신정 때는 경황이 없었지만 구정 연휴를 맞이하여 모처럼만에 그들의 방식대로 다시 만났다.

두툼한 겨울등산잠바의 오른쪽 주머니 안에서 경은의 왼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던 규태가 옆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거들 결혼은 언제나 할 거냐? 올해 안에는 해야지?”

경은과 달리 자신의 잠바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 있던 진숙이 빙긋이 웃으며 상윤을 바라봤다.

“급할 게 뭐가 있네? 난 아직 프러포즈가 뭔지도 모르는데!

너네들 시집장가 다 보내주고 아주 천천히 한번 생각이나 해 보지 뭐!”


이때 경은이 토란진 표정으로 상윤을 바라봤다.

“상윤 오빠 뭐예요! 아직도 프러포즈를 안 했단 말이에요?

그럼 잘됐네요! 지금 여기서 당장 하세요? 프러포즈!

진숙언니가 고무신 바꿔 신기 전에…”

싱글벙글 웃으면서 규태까지 거들고 나섰다.

“여기 정말 좋네, 프러포즈하기에 죽여주네!

퍼떡 분위기 잡고 한번 해봐라, 프러포즈!”


두 사람이 프러포즈를 하라고 재촉하자 상윤이 머쓱한 표정으로 왼쪽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놀랍게도 상윤이 꺼내든 것은 작은 반지 케이스였다.

그렇잖아도 상윤은 규태의 조언으로 오늘을 위한 나름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케이스를 열자 가느다란 금반지 하나가 광채를 뽐냈다.

잔뜩 감동 어린 눈빛으로 몸들 바를 몰라하던 진숙에게 상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숙동무! 내가 오늘 동무한테 끼워주고 싶어서 어제 평양백화점에서 큰맘 먹고 산 건데 말이야,

빛깔이 정말로 곱지 않네? 어떻게 내가 직접 끼워줄까?”


이 같은 엉성한 프러포즈에 규태는 뭐가 재밌는지 돌아서서 키득키득 웃고 있었지만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돌변한 경은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 뭐야 이거! 언니 절대로 받아주면 안 돼요!

세상천지에 이런 밋밋한 프러포즈가 어디 있어요?”


규태가 상윤의 무릎을 가리키며 눈짓으로 힌트를 주고서야 상윤이 마지못해서 무릎을 꿇고 앉더니 사정하듯 말했다.

“내 죽을 때까지 오직 진숙동무만 사랑할 테니까 나랑 결혼하자우!”

앞뒤 다 잘라먹은 단도직입적인 프러포즈 멘트에 여전히 진숙의 반응이 없자 상윤이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 평생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살 테니까 제발 결혼해 주시라요! 진숙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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