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퍼즐 맞추기 5
그리고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최 실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 위원장의 집무실로 직통전화를 걸었을 때는 밤 열 시를 넘기고 있었다.
두 정상 간의 통화는 삼십 여분 동안 이어졌지만 의견충돌로 인한 큰 소리도 없었고 정 위원장 특유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부적으로는 정 위원장 본인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대통령님의 우려를 털어낼 방안에 대하여 저도 시간을 가지고 심사숙고해 보겠습니다,
통일정부까지 세워진 마당에 제게 무슨 미련 같은 것이 남아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살펴보아야 할 몇 가지의 일들을 살펴본 후 결단을 내리갔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우리 연방에 위원장님이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 민족에겐 크나큰 다행이지요,
위원장님께는 늘 고맙고 미안하지만 말입니다,
오직 우리 연방의 내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계시는 위원장님의 결단을 후일의 역사가들이 높이 평가할 것입니다!”
다음순간 정 위원장의 침묵으로 일순간 정적이 이어지자 대통령은 호흡을 멈출 정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내 평소와 다름없는 정 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대통령의 호흡은 다시 시작되었다.
“대통령님께서는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아신다는 듯이 말씀하십니다만 아직은 아닙니다,
며칠 고민을 해본 후 답변을 드리갔습니다!”
오늘따라 무겁게만 느껴지던 직통전화기를 내려놓은 정 위원장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사실 진즉부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정말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통치수단마저 내려놓는다면 정 위원장으로서는 그야말로 모든 걸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의당 보통의 왕국 주인이었다면 갈 때까지 갔으면 갔지 아직도 멀쩡한 자신의 왕국을 스스로 내려놓을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 위원장인들 왜 회한이 없었을까 마는 이 시점에서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향한 항해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진실로 위대한 대고려연방을 갈망했기에 이제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호막마저 걷어 올리기 위한 장고에 들어갔다.
2031년 4월 9일,
임시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사용 중인 자유의 집 앞마당에서는 독도대첩 2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2년 전 오늘은 괴물 ICBM에 탑재된 TNT 5000만 톤의 수소폭탄을 폭발시켜서 전 세계를 화들짝 놀라게 했던 바로 그날이다.
일본 상공을 유유히 날아서 홋카이도 동쪽 태평양의 어느 지점을 강타했을 때 일본열도는 그야말로 84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당시 미국은 북미 간의 전면적인 핵전쟁을 벌일 만큼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라 치욕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독도 앞을 가로막고 있던 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일본영해로 철수하자 독도 점령을 목전에 둔 일본 자위대의 모든 전력도 덩달아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이것으로 사쿠라가 흩날릴 때 일본이 작정하고 일으켰던 독도전쟁은 마침내 종결되었고, 우리 민족의 막둥이 영토는 다시금 우리 민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연방정부는 한반도 통일 후 처음으로 거행되는 독도대첩 2주기 기념식을 다분히 주변국들을 의식하면서 성대하게 치르고자 했다.
연방대통령의 축사에 이어서 정 위원장이 단상에 올랐을 때 확연히 달라진 그의 모습에서 모두는 놀랐다.
최근 한반도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던 정세의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 탓이었을까,
체중도 적당히 감량되어 확실히 사십 대 중반의 연륜에서 풍기는 중후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일본이 우리 땅 독도를 침범했을 때 팔천만 인민들은 대동단결하여 우리의 영토를 지켜냈습니다!
이제 우리 대고려연방이 나아가고자 하는 앞길을 가로막을 장애물 따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고려연방은 광개토대왕 이래 가장 강력한 국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 국력의 원천은 우리 연방이 보유한 세계최고 수준의 무력입니다,
그리고 그 무력은 북과 남의 용맹스러운 군대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불멸의 진실입니다!
오늘 나는 독도대첩 2주기라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하여 또 한 번 구국의 결단을 단행하고자 합니다!”
예정에 없던 정 위원장의 폭탄선언으로 장내는 물론이고 TV로 시청 중이던 팔천만 국민들을 잔뜩 긴장시켰다.
노련한 정 위원장은 자신의 말을 경청하던 장내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면서 최대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정 위원장의 목소리 톤이 최대치로 높아지면서 마치 백두산호랑이가 포효하듯 우렁차게 말했다.
“오늘 이 시각부로 영웅적인 북과 남의 두 군대는 위대한 대고려연방의 군대로 통합되었음을 선언합니다!
통합의 모든 실무절차를 오늘 중으로 종결지어서 명실 공히 대고려연방의 통합군대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동안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민 대통령과 정 위원장 사이에서만 진행 돼온 남북 군대의 통합 문제는 어제저녁 연방최고회의에서 극적으로 합의되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마지막 한 조각을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상황인식을 세 사람이 공유했다.
결단의 몫은 온전히 정 위원장에게 있었다.
대고려연방의 출범과 함께 자신들의 미래가 불안했던 북한군부는 시간이 갈수록 불만이 누적되어 갔다.
이러한 북한군부의 불만은 정 위원장이라는 독특한 권위에 의해서 억지로 눌려지고 있었을 뿐 마땅한 해결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도가 있는 법, 째깍째깍 다가오는 시한폭탄의 초침 소리를 그도 듣고 있었지만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단과 동시에 그의 할아버지 때부터 유지돼 왔던 정 씨가의 왕국을 이제는 정말로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끝내 고독한 결단을 단행했다.
아직 군부만큼은 정 위원장의 통제 하에 있었던 관계로 그 누구와 협의하는 절차도 없이 오직 그 스스로 결단을 내렸다.
결단을 내리기 전, 정 위원장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잠들어 있던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하여 자신의 결정을 보고하는 요식행위까지 갖추었다.
금수산태양궁전에서 돌아온 정 위원장은 곧장 민 대통령에게 연락을 취했고 저녁 무렵 평화의 집에서 긴급 연방최고회의가 소집되었다.
연방최고회의에서 정 위원장이 제시했던 남북군대의 통합방식은 인민군대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답게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남북한의 군대를 통틀어서 별 두 개 이상의 장성들은 금일 자로 전원 퇴역조치하고 소대급 이하의 남북병력을 절반씩 섞어서 긴급 재편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이 조치는 정 위원장이 연단에 올라서는 순간 단행되기 시작하여 연설을 마쳤을 때는 명령서가 남북군대의 모든 예하 부대에 하달되어 있었다.
연설을 마친 정 위원장이 연단 아래로 내려오자 연방정부의 통합국방부장관이 깍듯이 거수경례를 한 후 정 위원장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군통합작전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북한군의 핵무기 통제 부대를 연방정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다.
연방 국방부 직할의 특별보안부대 요원들이 핵무기를 통제하던 인민군 부대에 일시에 들이닥친 상황에서 정 위원장의 육성명령이 직접 하달되었다.
특별보안부대장이 건네는 휴대폰에는 정 위원장의 얼굴이 화면 가득 드러나 있었고 핵무기 통제 부대장은 진땀을 흘리면서 거수경례를 했다.
정 위원장은 화상통화로 신분을 확인한 부대장에게 단호하게 명령했다.
“부대장! 지금부터 인민군대의 총원수로서 내가 내리는 명령을 이행하시오!”
“네! 총 원수님의 명령을 즉각 이행하갔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공화국의 핵무력은 연방정부에서 직접 통제하게 될 것이오,
연방정부에서 파견 나온 요원들에게 부대를 개방하고 그들의 요구에 적극 협조하시오!”
정 위원장이 작성한 주요 부대의 숫자만 십여 군대가 넘었고 해당 부대장들에게 일일이 직접 화상통화로 명령하는 파격적인 방식을 취했다.
피를 말리는 긴장 속에서 진행된 북핵통제부대의 연방정부 접수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정 위원장은 특별보안부대가 임무를 완료할 때까지 통합국방부 청사에 마련된 영상모니터로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작전이 최종적으로 완료되었을 때 정 위원장의 이마와 깍지 끼워진 양손에는 흥건하게 땀방울이 맺혔다.
시종일관 정 위원장의 옆 자리를 지키면서 작전상황을 지휘하던 통합국방부 장관이 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낸 자신의 손수건으로 스스럼없이 정 위원장의 이마를 닦아주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