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퍼즐 맞추기 6
이때였다. 정 위원장의 바로 뒤에서 장산곶매의 눈으로 주변을 감시하던 곽 사령관이 장관의 손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정 위원장의 호위사령관으로서 당연한 그의 소임이었다.
정 위원장이 호방하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장관이 내민 손수건을 건네받았다.
“우리 곽 사령관은 말이야, 열이면 열 가지가 다 좋은데 매사에 융통성이 없는 것이 문제야!
이제 같은 편이 되었으니 친하게들 지내라우!”
곽 사령관의 어깨를 몇 차례 두드린 정 위원장이 손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이며 손바닥을 닦은 후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장관! 이제 우리의 핵무력을 연방에 모두 넘겼으니 앞으로 무탈하게 잘 관리하시오!
아 그리고 이 손수건은 내 깨끗이 빨아서 이후 만나게 되면 다시 돌려 드리겠소”
“고맙습니다 위원장님! 위원장님의 결단으로 이제야 온전한 통일이 완성되었습니다,
위원장님께서 안전하게 넘겨주신 핵무력은 앞으로도 대고려연방의 안위를 지키는 특등 수호신으로 그 역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장관의 말이 끝나자 통합국방부 청사에 모여 있던 모든 문무관들이 일제히 기립하여 장관과 함께 거수경례를 했다.
놀랍게도 그 대상은 바로 정 위원장이었고 저 만치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연방대통령과 민 대통령도 박수를 치면서 정 위원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한 곽 사령관의 눈가에서는 촉촉한 눈물이 맺혔다.
핵무기통제부대의 연방 이관 작전이 완료되자 소대급 이하의 남북병력을 강제로 혼합시키는 남북군대의 통합작업도 속속 작전완료 보고가 올라왔다.
자정이 임박한 시각, 드디어 남북군대의 물리적 통합작전이 완료되었다는 최종보고가 올라왔다.
짧은 시간 다소 무리하게 남북의 양 병력을 혼합하는 과정에서 열혈 청년들 간에 있을 수 있는 소소한 충돌들은 더러 있었지만 이렇다 할 큰 충돌 없이 모든 작전이 완료되었다.
독도대첩 2주기 기념식장에서 정 위원장은 오늘 중으로 남북군대의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질 것임을 선언했었다.
자정 임박 5분 전에야 최종 보고가 올라왔고 연방정부청사 2층의 비좁은 통합국방부에서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오늘자로 통합국방부의 제1,2 차관으로 임명된 북한의 국방상과 남한의 국방부장관은 통합국방부 장관의 좌우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환호성에 답했다.
그 맞은편에는 연방대통령을 중심으로 정 위원장과 민 대통령이 좌우에 선채 환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다.
잠시 후 통합국방부장관의 구령에 맞추어서 모든 문무관들이 3인의 연방최고회의 수장들에게 남북군대의 통합작전이 완료되었음을 보고한 후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거수경례를 했다.
핵무기 통제 부대를 이렇듯 신속하게 연방정부의 통제 하에 접수한다는 것과 남북의 양 군대를 물리적으로 반반씩 섞는다는 발상은 정 위원장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렇듯 정 위원장은 마지막까지 대고려연방의 안착을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자 했다.
십 년에 걸쳐서 완만하게 진행하려던 대고려연방의 완전한 통합작업이었지만 채 일 년 만에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마저 그 일정을 대폭 앞당겨서 맞추어버렸다.
이 시기 통일의 주역들이 참고할만한 그 어떤 롤모델도 없었던 것은 어느 한쪽의 치우침도 없이 오롯이 평화적으로 달성한 동등한 통일 작업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각기 서로 다른 두 체제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문제에 있어 이론과 실전의 차이는 실제로도 엄청났다.
실무에서는 한번 트여버린 통일의 물꼬를 인력으로 조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통일과정에서 불어나버린 물길을 조정하고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도도한 물길에 몸을 내맡기고 함께 떠내려가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연방화폐의 등장은 북한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동력원으로 작용했다.
기존의 북한 구권과 동등한 가치로 화폐교환이 이루어지자 북쪽 다섯 개 주의 경제는 일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이즈음 시장경제의 참 맛을 경험하게 되었다.
한번 맛 들인 시장경제의 중독성은 이제 통일이전의 시스템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사회현상으로 나타났다.
연방군대로의 통합작업이 대체적으로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구 북한군의 위상변화 덕분이다.
연방군대의 근무조건과 복지는 구 남한 군대의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에 기존의 북한군대에 비해서는 월등하게 상향된 조건이었다.
징병제가 폐지된 군대는 이미 그들의 평생직장이었으므로 복지시스템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남쪽에 비해서 청년실업률이 비교적 높았던 북쪽 다섯 개 주에서는 부사관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연방군대에 자원하려는 청년들이 많았다.
이렇게 되자 남북의 군대를 반반씩 혼합하는 물리적인 무리수를 두었음에도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일이십 대 청년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던 대고려연방주의에서는 남과 북을 구분하려는 편협주의를 꼰대라고 조롱하면서 경멸하기 시작했다.
남과 북의 구분보다는 세계 3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선민의식이 자리를 잡았고 지역 간 갈등보다는 오히려 세대 간의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급군인들의 사정이었고 위쪽으로 올라가면서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어느 날 갑자기 연방군대로 재편되면서 강제로 예편된 장성들의 수가 남북을 통틀어서 무려 수백이 넘었다.
그중에서도 북한군의 퇴역장성들은 이런 사태가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한때는 선군정치의 최선봉에 섰던 자신들이었지만 통일의 결과물로서 군대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할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자신들을 통일의 직접적인 피해자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 불만은 점차 연방정부로 향했다.
이럴 때 자신들이 직접 나서 북한군부의 재건에 성공한다면 통일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점차 확산되고 있었던 독버섯의 진원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친 중국 성향의 퇴역 군부세력이 도맡았다.
작년 7월 역사적인 대고려연방의 통일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화합차원에서 대폭적인 사면 조치가 이루어졌고 그 틈에는 박철 일당도 끼어 있었다.
박철 일당이 배양한 독버섯들은 사십여 년 전 독일의 통일과 함께 해산됐던 동독군대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그렇잖아도 불안감을 느끼던 군부 인사들의 마음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십 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대로 인민군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유언비어의 효력은 북한군부의 기강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아직 자신의 권위가 살아있던 적절한 시기에 놀랍고도 대담한 방식으로 정면 대응했다.
기습적인 군통폐합조치로 불시에 일격을 당한 독버섯들은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못해보고 곧장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
이런 전격적인 방식으로 남북의 군대가 통합될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이 받은 충격과 허탈감은 곧 극도의 분노로 변해갔다.
점차 연방정부에 반기를 드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대고려연방의 통합을 위협하는 반연방 적대세력으로 급부상했다.
그래도 구 남한지역은 진보와 보수로 나뉜 두 정치세력 간의 대립이 오랜 관행처럼 굳어져 있어 대체로 관리가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
이에 반해서 북쪽 다섯 개 주는 오랜 세월 3대에 걸친 단일지도체제에 적응되어 있었던 관계로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들이 구 남한지역과는 확연하게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