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반통일 세력 3
3월의 마지막 주에 접어들었지만 분단시절 남쪽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벚꽃들이 이제 한반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희귀 수종이 되고 말았다.
과거에는 봄철 한때 피어나는 사쿠라의 화려함에 취해서 각 지자체들마다 마구잡이로 심다 보니 이맘때면 온 나라가 사쿠라의 물결로 춤을 출 지경이었다.
그런데 독도전쟁을 겪으면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에 대한 감정들이 악화되면서 일본의 상징 사쿠라가 온 금수강산을 뒤덮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급기야 지자체차원에서 차차 베어지기 시작하더니 대고려연방정부가 출범하자 아예 정책적으로 벚나무 퇴출작업에 나섰다.
벚나무를 뽑아낸 그 자리에는 대고려연방의 국화인 무궁화와 목란을 사이좋게 심어서 통일 새나라의 자긍심을 드높여 나갔다.
그러나 구 남한지역의 일부 지자체에서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벚꽃축제를 강행하는 사례가 있었다.
신일진회의 하부단체인 ‘벚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일명 벚사모가 자금을 대고 기획한 행사였다.
벚사모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조건으로 해당 지역의 유력 정치인을 매수하여 결사적으로 벚꽃축제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축제는 신통치 않았고 예전의 넘쳐나던 인파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썰렁한 분위기였다.
축제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삼십만 원 상당의 백화점상품권과 고가의 기념품도 나누어줄 계획이었지만 이러한 물량공세마저도 싸늘한 사회적 분위기 탓에 신통치 않았다.
값비싼 기념품들이 행사장의 천막 귀퉁이에 그대로 쌓여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나 회장이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이러다간 정말로 우리 토착 왜인들의 설자리가 남아나지 않겠어!
보다 더 자극적인 방법을 찾아봐야지 이런 방식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단 말이야!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던 나 회장이 잠시 후 기막힌 아이디어 하나를 찾아냈다.
‘그렇지! 뭐니 뭐니 해도 민심을 후벼 파는 데는 부동산만 한 문제가 없지,
가끔씩은 레드콤플렉스도 곁들이면서 말이야,
이제야말로 우리 토착 왜인들의 숨겨진 힘을 제대로 한번 보여줄 때가 되었어,
그래 정면으로 한판 붙어보자고!’
자신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고려연방의 분열을 획책해야 했다.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로부터 자금지원도 넉넉하게 받았던 터라 이미 실탄은 충분히 장전돼 있었다.
제아무리 통일새나라에 대한 부푼 기대로 들떠 있다지만 자금으로 밀어붙인다면야 못해낼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공돈 싫어할 사람은 없을 테니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뿌려 된다면 분단시절을 그리워하는 여론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이후 한껏 고무된 사회적 분위기 탓에 여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을 뿐 아직도 친일세력들은 얼마든지 늘려있다.
그들이 다시 활개 칠 수 있도록 연방의 사회분위기를 분열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신일진회에 주어진 당면 과제였다.
연일 대규모의 군중시위를 개최하여 사회적 혼란을 부추겨 나간다면 이겨낼 재간이 어디 있겠는가!
제방 가로수 길을 따라서 화려하게 피어오른 사쿠라의 물결을 바라보며 나 회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를 떠나온 윤 비서관은 그의 친정인 동북아역사재단의 북방사 연구소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바쁜 업무 중에도 민 대통령의 부름에는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갔다.
해거름 무렵 두 사람을 태운 퇴임 대통령의 의전용 차량이 경호 차량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정 위원장의 관저가 있는 평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윤 비서관! 아니지 이젠 윤 소장이지요,
윤 소장이 이끌던 삼일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대외적으로는 비밀에 부쳐졌지만 나의 기준에서 볼 때 우리나라 통일의 일등공신이었어요,
정 위원장께서도 삼일팀에 대해서는 각별한 신뢰를 가지고 있어요,
아까운 팀인데 향후의 계획은 결정되었나요?”
“예, 어차피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은 팀이다 보니 굳이 해산하지 않고 우리 재단 자체의 연구모임으로 존속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그래요 아주 잘 판단했어요,
형식적인 통일절차는 완료되었지만 내용적으로도 더욱 원숙한 연방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시기가 더욱 중요할 수 있어요,
다시는 분열되지 않을 굳건한 연방으로 다져나가는 과장도 만만치는 않을 거예요,
대고려연방이 단단하게 다져질 때까지는 우리 모두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나 역시도 미진한 힘이나마 연방정부의 자문위원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할 생각이에요,
윤 소장 팀이 앞으로도 날 좀 많이 도와주세요,
이것 보세요! 통일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북조선재건회의라니!
이런 단체가 버젓이 활개를 치도록 방치되어선 안 됩니다!
연방대통령님께서도 내게 전화 주셔서 강한 우려의 말씀을 전하셨는데 정 위원장이 직접 나서는 것 말고는 딱히 해결책이 떠오르지가 않아요,
일단 만나서 해결책을 한번 찾아봅시다!”
평양의 정 위원장 관저에 도착했을 때 정 위원장 부부가 문밖까지 마중 나와 따듯하게 민 대통령 일행을 맞이했다.
여전히 다소곳한 미소가 매력적인 정 위원장의 부인이 두 사람에게 각별한 반가움을 표시했다.
“어째서 영부인과 함께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뵙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다음번에 뵐 때는 꼭 함께 오십시오!”
“네 다음번에는 꼭 함께 오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자주 방문하겠다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희 내외가 앞으로 여사님을 꽤 번거롭게 해 드릴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민 대통령이 농담 삼아 던진 말이었지만 부인은 특유의 환한 미소로 재치 있게 화답했다.
“매일은 곤란합니다만 한 달에 한 번씩은 일없습니다,
아닙니다! 영부인과 함께 오신다면 매주 오시더라도 환영하겠습니다!”
정 위원장 부부의 안내로 들어선 관저 안은 높은 담장 밖에서 사람들의 상상력만으로 만들어낸 애깃거리에 비해서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차분한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정성 어린 손길로 가꾸어진 정원의 관리 상태로 볼 때 최근 이 집주인 부부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거실로 안내된 두 손님이 잠시 정 위원장과 환담을 나누던 사이 주방에서 흘러나온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은은하게 전해지면서 코끝을 간지럽혔다.
방문한 시각이 때마침 저녁시각이라 식탁에는 저녁상이 차려지고 있었고 주 메뉴가 청국장이었던 까닭이다.
부인이 직접 앞치마를 두른 채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여느 가정집과 다르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손님들은 정서적인 공감대속에서 심리적으로 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식사준비가 다 되었다는 부인의 상냥스러운 목소리를 듣고서야 모두는 즐거운 표정으로 식탁으로 이동했다.
잡곡밥에 청국장을 중심으로 서너 가지의 나물이며 달걀말이와 생선 몇 토막을 곁들인 소박한 식단이지만 맛보다는 건강을 고려한 정갈한 음식들 일색이었다.
정 위원장의 곁에 서있던 부인이 잔뜩 미소를 머금은 모습으로 말했다.
“위원장님의 체중감량에도 도움이 되고 해서 건강을 위하여 저희들은 가급적 이렇게 차려먹습니다,
두 분 손님들의 입맛에도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모쪼록 많이 드십시오,
댁에 계시는 영부인의 손맛에는 못 미치겠지만 혹시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타박만은 말아주십시오!”
우럭 한 마리를 통째 넣어서 끓여낸 미역국부터 한 모금 맛보던 민 대통령이 마치 놀라운 맛집이라도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사님의 음식솜씨는 진작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만 역시 소문대로입니다,
제 입맛에도 딱 맞습니다!,
이 미역국은 정말로 기가 막힙니다!”
민 대통령의 인사말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보다는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이었지만 그 어떤 기름진 진수성찬보다 훌륭한 만찬이었다.
민 대통령과 윤 소장은 자신들의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것으로 음식을 대접하는 이의 정성에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