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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May 20. 2023

신이 주사위 놀이를 좋아한다고?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양자역학은 정말로 어렵고 난해하지만 특히 물질의 기본 단위인 입자들의 형태를 생각해 보면 깜찍할 정도로 신기하다. 평소에는 파동처럼 행동하면서 확률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위치에서 존재하지만 관측이 되는 순간 하나의 위치를 결정하고 입자처럼 행동한다? 당대를 호령하던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이런 모호성에 발끈하고 나섰다. ‘달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양자역학의 손을 번쩍 들어주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좋아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틈새를 놓치지 않고 관측자의 정체에 대하여 주목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보라고! 관측자가 쳐다보니까 입자들이 정체를 드러낸다고 하잖아? 이제야말로 물질과 구분된 의식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게 되었어!’ 현대과학의 발전과 함께 저 구석자리로 밀려나있던 이원론자들이 이 재미난 논쟁에 뛰어들 채비를 했다.


물질 일원주의에 맞서서 어떡하든 물질과 분리된 의식의 존재를 입증하고 싶은 분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아쉽게 되었지만 번지수를 잘못짚었다. 여기서의 관측자란 호모사피엔스처럼 의식을 지닌 생명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의 상태를 완벽한 진공상태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공기분자와 빛이었다. 파동의 간섭 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결어긋남’ 현상의 요인들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은 각자의 타고난 유전자와 환경적 요인 그리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수없이 겪게 될 확률게임과도 같은 우연들이다. 타고난 유전자와 주어진 환경을 생각한다면 애당초 공정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여지가 없을 듯 보이지만 딱 한 가지! 확률게임과도 같은 우연만큼은 다르다. 주사위 놀이를 할 때 어느 하나의 숫자가 나올 확률은 1/6, 그 어떤 선행 원인과도 상관이 없는 우연의 결과만 있을 뿐이다.


앞과 뒤의 연관성이라고는 1도 없는 우연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면서 뭇 생명체들의 삶 역시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아침 출근에 앞서 잠시 베란다 카페에 앉아 울긋불긋 온갖 색깔들로 흐드러지게 핀 화단의 꽃들을 바라본다. 따듯한  5월의 봄햇살을 맞으며 기지개를 켜는 초록 생명들의 신비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아메리카노 원두 두 잔을 탁상에 내려놓던 이 꽃밭의 주인장이 자신의 작품을 신명 나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저기 국화 군락지들 가운데 키 크고 튼실하게 자란 애들과 사이사이에 키 작은 애들의 차이가 뭔지 알아요? 저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우연의 결과일 뿐이죠, 작년 봄에 꺾꽂이한 가지들을 내 손길 가는 대로 마구잡이로 심었을 때 우연히 거름기가 많은 흙에 심긴 애들과 그렇지 못한 애들의 차이란 거죠, 다른 의미는 없어요. 그냥 우연이었죠!”


그때 유난히도 우연이라는 단어가 내 귓전을 강타했다. 어느덧 십 년의 시간이 흐른,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절체절명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빗길이라 조심스럽게 고속도로를 운행 중이었을 때 과속으로 달려오던 뒤차의 충격으로 타고 가던 RV 차량이 몇 바퀴 회전하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마치 당구를 칠 때의 그 느낌처럼 사소한 충격이었지만 정밀하게 조율된 각도 탓에 통제되지 않는 회전이 시작되었다.


중앙분리대를 충격하여 정신을 잃을 때까지의 몇 초 동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영화에서처럼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멋진 회상 장면은 온데간데없고 ‘아 이렇게 해서 죽는구나!’를 생각하며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하게 기다렸던 것 같다. ‘꽝!’하는 순간 의식을 잃게 되면서 자아가 사라져 버렸다. 다음 순간 깨어나지 않았다면 찰나의 인생은 종결되고 곧바로 영원한 죽음에 들었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이내 에어백이 터지면서 실내는 새까만 연기로 뒤덮였다. 매 쾌한 연기 때문인지 난 정신을 회복했고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 겨우 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연 1: 차량은 폐차가 될 정도로 박살이 났지만 다행히 안전띠와 에어백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우연 2: 하필이면 뒤따르던 차량이 다소 멀찍이 떨어져 있어 2차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교통경찰도, 119 소방대원도, 응급 치료한 의사도, 저마다 흥분하면서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쯤 되면 조상님의 혼령이라던가 신을 등장시키고 싶어서 입이 건질 건질 한 분들이 있을 법하다. 당시 난 오십 대 조 할아버지까지 해원식을 시켜주겠다던 조곤조곤한 귓속말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처지라 딱히 그런 도움을 기대할 처지도 못되었다. 50대조면 거의 석기시대까지 올라가는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지만 말이다.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고전역학과 함께 자연계의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에 따르면 그냥 우연이 있었을 뿐 결과에 선행하는 원인 같은 것은 없다. 쉽게 일어나지 않을 법한 확률의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우리는 재수가 좋았다느니 땡잡았다느니 하는 말을 사용한다. 바로 그런 재수 좋은, 땡잡았던 우연의 결과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왜? 윷놀이를 하다 보면 아주 가끔씩은 세 번 연속으로 윷이 나온 후 또다시 세 번 연속으로 모가 나올 확률도 있지 않은가!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지인 중에는 운세를 봐주는 것을 생업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내게 넌지시 건네는 말이 혹시 어디 아픈 데가 없냐는 말이었다. 당시 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종합 건강진단의 결과지를 받아본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묻는 의도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더 이상 관련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화재를 돌려버렸다.


제아무리 확고한 신념의 물리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50대조 할아버지를 해원 시켜드리지 않으면 자손들에게 악운이 닥칠 것이라고 말한다면 엄청 기분이 나쁠 것 같다. 그래서 요상한 귓속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것으로 그들과 엮이지 않으려 매사에 주의를 기울인다. 작은 빈틈이라도 허용한다면 그들은 온갖 종류의 협박질을 가하면서 가스 라이팅을 시도할 테니 말이다.


타고 가던 비행기가 추락하여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 영화를 본 후에도 굳이 해괴한 원인을 만들어서 인과관계로 설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필 그 비행기를 타게 되었던 것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수없이 겪게 될 확률게임과도 같은 우연에 불과했을 텐데도 말이다.


어설픈 물리주의자가 생각하는 가장 올바른 정답지는 가급적 그들과 엮이지 않는 것이 첫 번째요, 그다음은 양자역학을 비롯한 현대 과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우주만물의 본래 모습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면 조곤조곤 속삭이려는 귓속말을 물리칠 지혜와 용기가 생겨난다.


그렇지 않은가! 누구라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는 그것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면 그뿐이거늘.  


문제의 근원은 지나친 과욕으로부터 빚어진 일! 신의 죽음 이후에도 또다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지나친 과욕을 내려놓았을 때, 몸도 마음도 훨씬 건강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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