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62)

마지막 보고서 4

by 맥도강

드디어 칠 일째 저녁이었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다투던 기획안이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내려놓음으로써 최종 기획안이 선정되었다.

일주일째 머리를 감지 못했던지 최종안으로 선정된 규태의 몰골은 차마 눈을 뜨고서는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비슷한 몰골의 팀원들이 그에게 박수로 화답했다.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미소 짓던 규태가 오른손가락의 검지와 중지를 펴는가 싶더니 이내 테이블 위로 머리를 파묻고 말았다.


7박 8일 만에 완료된 최종 보고서를 지참하고 장 팀장이 윤 소장의 방으로 들어섰다.

채 오 분 만에 십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빠르게 읽어 내려간 윤 소장이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말투로 말했다.

“사실은 나도 이와 같은 결론을 예상하고 있었어!

통일의 전 과정에 참여했던 우리 팀의 성격상 역시 대고려의 역동성이 담긴 이런 식의 결론이 마땅하겠지,

이만하면 됐어! 어쩌면 이 제안서가 우리 팀의 이름으로 내어놓을 마지막 보고서가 될 것 같군,

모두들 고생했어!”


보고서를 챙겨 들고 지체 없이 재단 건물을 빠져나온 윤 소장은 곧장 민 대통령의 성북동 자택으로 향했다.

보고서의 한 장 한 장을 떨리는 손으로 넘기던 민 대통령의 표정은 밝았다가 굳어지기를 반복하는 심오한 표정이다.

민 대통령이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을 때 윤 소장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대통령님! 바로 지금이 반통일 세력의 뿌리를 도려낼 최적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민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답했다.

“이번 참에 친일이든 친중이든 반통일 세력들을 일거에 도려내자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헌법 개정을 포함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들을 압축적으로 과감하게 전개함으로써 이참에 반통일의 뿌리를 통째 도려내야 합니다!”

“윤 소장도 알다시피 난 본래 대단히 신중한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윤 소장 팀의 삼일특공대를 만나고부터는 내 성격도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어요,

그래요 지금은 우리 삼일팀의 제안대로 이렇게 역동적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옳아요!

대고려연방의 상징인 큰 칼을 빼어 들고 말 달리는 광개토대왕식 해법으로 말입니다,

삼일운동 116주년을 맞이하여 이 보고서가 위력을 발휘한다면 하늘에서 광개토대왕과 이순신 장군께서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군요!”


다음날 아침, 민 대통령은 연방대통령을 만나기 위하여 연방정부청사로 달려가는 중이다.

어쩌면 이번 기회가 통일 후의 혼란상을 극복하고 안정기로 들어설 것이냐, 아니면 되돌아올 수 없는 분열의 길로 나아갈 것이냐를 가를 대고려연방의 마지막 고비가 될 것 같았다.

고심 끝에 내어놓은 삼일특공대의 보고서는 사실상 정 위원장의 생각을 그대로 풀어서 옳긴 것과 같았다.

통일 후 계속되던 내부의 혼란도 따지고 보면 생경한 민주주의 시스템에 북쪽사회가 잘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초래된 일이다.

규태의 접근방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로 접근했다.

정 위원장을 위시한 북쪽의 인민들이 동의하는 방식으로 당면한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했다.

바로 이것이 일반이론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대고려연방의 상징 광개토대왕식 해법이었다.


민 대통령을 실은 고급 중형 세단이 경호 차량들의 호위 속에서 대고려연방의 수도 광개토대왕 특별시에 진입했다.

연방정부청사를 향해서 달려가는 차창 밖으로 어느새 삼백만의 거대인구가 상주하는 아름다운 신도시가 펼쳐졌다.

드디어 광개토대왕 시는 오매불망 바라던 자치주로의 승격이 이루어짐으로써 연방의회의원을 선출할 수 없었던 그동안의 설움을 떨쳐냈다.

이로써 연방헌법에 규정된 명실 공히 열두 개의 자치주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

채 5년 전만 하더라도 흉물스러운 철조망 속에서 수백만 개의 지뢰들이 파묻힌 사람의 출입이 엄격하게 봉쇄된 봉금지대였다.

사람의 흔적대신 야생의 동식물들만이 천혜의 군락지를 형성했던 85년의 봉금지대가 이제는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별천지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고귀한 통일의 꽃봉오리를 우리는 자자손손 영원히 보존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리아평화공원을 또다시 흉물스러운 철조망에 둘러싸이게 할 수는 없다.

또다시 수백만 개의 지뢰가 파묻힌 죽음의 땅으로 되돌릴 수는 없음이다.

보다 더 단단해진 대고려연방으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될 고비일 뿐이다.

이 고비만 잘 이겨낸다면 다시는 분열되지 않을 강철같이 단단한 나라가 될 수 있으리라 다짐하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연방정부청사 3층에 위치한 연방대통령의 집무실에서 두 전 현직 대통령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민 대통령이 말하는 동안 연로한 연방대통령의 눈가에서는 촉촉한 물기가 묻어났고 손수건으로 눈가 주위를 닦으며 말했다.

“정 위원장이 힘들어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여사님까지…

세상에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그런 민망한 말씀까지 하셨을까요,

다 내가 무능해서 발생한 일입니다,

평생 학자로나 살아갈 것을 뒤늦게 정치판에 뛰어 들어서는 많은 분들에게 이런 면목 없는 일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민 대통령이 연방대통령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삼일특공대의 보고서에서 제시되었던 해법을 토대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참에 연방정부의 존재이유를 확실하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적어도 대고려땅 어디에서도 대고려연방보다도 상위의 개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집회허가를 내어준 연방행정법원의 판사가 들여다본 그 법조문조차도 대고려연방의 연속적인 안녕보다도 상위의 개념일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다시 고쳐 쓰면 되는 일입니다!

이번 기회에 결코 유약하지 않은 연방대통령님의 역동적인 지도력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대고려연방의 미래는 태양처럼 밝다는 메시지를 팔천만 연방 국민들에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정 위원장의 판단이 옳았음을 북쪽의 인민들에게 재차 삼차 확인시켜 주셔야 합니다!”


연방대통령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민 대통령의 격정적인 질책을 듣고 있었고 손수건을 쥔 그의 오른손이 힘껏 쥐어졌다.

“민 대통령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난 본시 평생을 민족사학자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방금 하신 그 말씀은 저 같은 옹졸한 학자가 감당하기에는 분명 벅찬 일이긴 합니다만 기왕지사 이렇게 되었으니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래요! 내 평생 정치에는 욕심이 없었지만 후일의 역사가들이 대고려연방의 초대 대통령이 겁쟁이였다고 기록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함께 정 위원장을 만나러 갑시다!

가서 우리 세 사람이 손이라도 맞잡아서 팔천만 국민들의 걱정거리를 해소시켜 줍시다!”


이 시각 정 위원장의 관사 경호동에 마련된 연방총무처 사무실은 갑자기 부산해졌다.

연방대통령 비서실로부터 모종의 연락을 받았던 것인데 진숙이 다급하게 정 위원장의 서재로 달려갔다.

“지금 연방대통령님과 민 대통령님께서 위원장님을 뵙기 위하여 헬기 편으로 출발하셨다고 하십니다!”

일어선 자세로 팔짱을 낀 채 바깥 정원만을 바라보던 정 위원장이 표정하나 없이 하는 말이다.

“뭣 하러 번잡스러운 행차를…”


헬기가 관사 앞에 내렸을 때 정 위원장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초췌한 얼굴을 한 부인이 진숙의 부축을 받으며 두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서있었다.

헬기가 내려앉은 바로 이 자리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 위원장에게 탄원하려는 수천 명의 민원인들이 진을 치고 있던 자리다.

정 위원장의 관사를 경호하던 연방경찰의 거듭된 경고에도 물러서지 않았지만 진숙의 요청으로 부인이 직접 이들을 설득하면서 문제가 풀렸다.

부인의 요청을 받아들인 민원인들이 오십 보 가량 뒤로 물러나 헬기의 착륙자리도 확보해 주었고 소란스러운 고함소리 대신 피켓시위로 전환하여 정 위원장에게 힘을 보태주었다.


연방대통령이 한눈에도 병세가 완연한 부인에게 다가가 정중한 자세로 목례한 후 인사말을 건넸다.

“여사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이 모든 것이 다 저의 부덕으로 빚어진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여사님, 용서해 주십시오!”

민 대통령도 따듯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었지만 부인의 굳어진 표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진숙은 두 대통령을 서재로 안내하면서 관사를 압도하던 무거운 기운 때문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다행히 서재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정 위원장이 문밖에서 두 대통령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문 밖까지 나가서 영접했어야 했는데 무례를 범했습니다!”

정 위원장의 표정 없는 인사말에 민 대통령이 먼저 반응했다.

“위원장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니까 그렇게까지 말씀을 안 하셔도 됩니다,

여사님께서 마중을 나오셨으니 고마울 따름이지요!”

세 사람은 서재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원탁의 응접 소파에 둘러앉았다.

두 대통령은 이 집을 강하게 짓누르던 침울한 기운을 느끼면서 한동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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