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부터 6학년까지 내리 같은 반으로 시골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고추 친구들이 환갑을 맞이하여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중고등학교를 인근에서 같이 다녔고 스무 살 무렵부터 매달 친목계를 모으는 사이였으니 그 막연함이야 더 말해서 무얼 하랴!
야무진 총무가 지난 십 년 동안 살림을 얼마나 잘살았던지 모인 곗돈이 이천만을 넘긴 터라 작년부터는 단체여행을 한번 다녀오자는 말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선후배들은 벌써 몇 번씩 다녀왔다면서 큰 목소리로 제주도 여행을 강추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웬걸 의외로 다른 친구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사실 좀 웃기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다들 더러 내어 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단체여행에 대한 심적인 부담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된다.
허물이라곤 찾을 수 없는 막연한 사이일지라도 지금까지 우린 타지에서 잠을 자고 오는 단체여행경험이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동기들은 초등학교 수학여행도 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당시의 전후사정을 알 수 있었다.
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여행기간에는 학교에 나와야 했던 모양인데 친구들 간 위화감 조성을 염려한 당시 선생님의 결정으로 수학여행을 취소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후배들부터는 다시 재개되었다고 하니 따지고 보면 우리 친구들만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기수가 되었던 거였다.
해가 바뀌어 2025년 을사년의 푸른 뱀띠해가 되었고 우리 모두는 12 지간의 다섯 번째인 환갑이라는 특별한 해를 맞이했다.
그러자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2박 3일 제주도는 좀 그렇고 무박 2일로 해서 가볍게 강릉 경포대 주변으로 기차여행을 한번 다녀오는 것은 어떻겠노?"
수학여행하듯이 기차여행이나 다녀오자는 한 친구의 제안에 모두는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다.
잠자리도 그냥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뒤늦은 늦깎이 수학여행 겸 환갑맞이 기념여행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는 세상 돌아가는 현실을 까마득이 모르고 있었다.
돈만 준다고 아무나 야간열차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총무의 경과보고를 듣고서야 손동작이며 머리회전이며 모든 것이 예전만 못한 우리들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단 삼분만에 인터넷 예매가 끝나버리는 실정에서는 우리 같은 노티들은 예매자체가 불가능하였고, 하는 수없이 25인승 미니버스를 대절하고 1박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전면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4월 12일 드디어 부산에서 출발하여 동해안을 경유하여 강릉을 다녀오는 1박 2일짜리 초스피드 단체여행이 시작되었다.
난생처음 수학여행을 떠나는 시골 아이들답게 태반이 준비물이라고는 달랑 몸뚱이 하나가 다였다. 속옷 한벌씩이라도 챙겨 담은 작은 가방은 고사하고 어떤 아이는 아예 반소매차림이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차창밖으로 펼쳐진 동해안 바닷가의 여유로운 풍경도 잠시, 온 마을이 폭격을 맞은 듯 화마가 스치고 간 처참한 광경은 여행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긴 불황에다 역대급의 산불 재난까지 엎친데 덮친 동해안바닷가의 모습은 생동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침울한 표정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늦깎이 수학여행을 떠나온 아이들로서는 중간중간 유명 관광지를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었다.
영덕풍력단지에 위치한 정크트릭아트 전시관 앞에서 잠시 정차했을 때 몇몇 친구들이 무심결에 전시실로 들어가 다양한 로봇들과 포즈를 잡으며 맘껏 사진을 찍고 나왔다.
나오면서 보니 입구 매표소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눈동자가 있었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늙은 아이들이 머쓱한 표정이 되어 다음부터는 오천 원짜리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라는 따끔한 훈계를 들어야 했다.
최종 종착지 말고는 딱히 정해진 중간 경유지가 없었으므로 경험 많은 관광버스 운전기사의 판단에 따라서 중간중간 내려서 일대를 구경하는 주먹구구식 관광이 이어졌다.
지금으로 치면 삼척시 청사쯤으로 보이는 삼척도호부 관아지를 구경하면서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죽서루와 송강 정철의 가사비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아름다운 정취를 만끽했다.
찌릿찌릿한 오금이 저려오는 급경사의 모노레일을 타고 당도한 환선굴이다.
그 옛날 용암이 흘러내려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굴 속을 끝도 없이 걸어가자니 새삼 어마무시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삼척에서 강릉을 향해서 버스가 손쌀같이 달려가는 동안 사십일 전에 펜션을 예약했다는 친구가 투덜거리는 말투로 말한다.
"예약한 강릉의 펜션에 전화를 해보려고 하는데 도통 전화를 안 받네! 앞으로는 패키지로 가야지 성질나서 못해먹겠어"
친구들 가운데 유일하게 대기업 부장의 직함을 달고 정년퇴직을 앞둔 입장이라 중요한 예약업무를 전담하고 있었는데 나름 유능하다는 허 부장의 다음 말이 우릴 불안하게 만들었다.
"예약이 되었으면 전화하면 안 되는 거야? 혹시 이거 먹튀 아니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짜증 나게!"
이미 4월의 중순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이상기후의 영향 때문인지 한 겨울 같은 한기까지 느끼며 장장 열 시간 만에 목적지인 펜션 앞에 당도했다.
25인승 미니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와 무작정 펜션 앞으로 들이닥치자 놀란 표정의 펜션사장이 뛰어나와 버스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쩌지"
이 말에 그렇잖아도 꼭지가 열리기 일보직전이었던 허 부장이 그만 발끈하고 말았다.
"아이고라니! 예약한 손님들이 왔으면 일단 방으로 안내를 해야지, 손님들을 추운 데 세워놓고 지금 뭐 하는 거요!"
버스를 인근의 공터로 안내한 후 돌아온 펜션사장이 허 부장에게 대뜸 하는 말이다.
"버스가 주차한 땅은 다른 펜션의 마당이라 주차가 가능한 공터로 안내해 주는 건데 왜 화부터 내시는 겁니까!"
"아니 우리는 예약한 손님이지 않소! 손님들을 이렇게 세워놔도 되는 거요"
다짜고짜 손님의 목소리가 계속 커지자 덩달아서 펜션사장도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안내를 해드리는 건데 왜 자꾸 언성을 높이시는 겁니까! 그리고 방 네 개를 주문하고는 열세 명이나 오셨으니 방 하나당 십만 원씩의 추가요금을 납부하셔야 됩니다"
손님이 화를 낸다고 똑같이 화난 표정으로 돌변한 펜션사장의 태도는 분명 서비스업을 운영하는 오너의 태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한참을 서로 고래고래 소리 높여서 티격태격하더니 추가요금을 납부하고서야 겨우 방으로 안내되었다.
까칠한 사장과는 달리 선한 인상의 여종업원은 옥상에 컵라면과 원두커피가 준비되었으니 야경을 즐기면서 편히 쉬시다 가라며 상냥스럽게 말했다.
모두는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가 예약된 인근의 바닷가 맛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목격했던 어두침침하면서도 휑한 다른 동해안 관광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젊음의 생동감으로 넘쳐났다.
일대가 마치 젊은이들의 해방구 같은 열기가 느껴지는 북적북적한 분위기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각종 해삼물로 요리한 산해진미들이 푸짐하게 차려진 가운데 펜션에서 겪었던 방금까지의 스트레스를 모두 잊고 왁자지껄한 만찬이 시작되었다.
내일의 일정을 의논하던 중 써빙하던 종업원에게 주변에서 구경할만한 곳을 물어보자 앳된 종업원은 좌고우면 하지 않고 허균의 생가터를 추천해 주었다.
보름 후 딸아이의 결혼식을 앞둔 총무가 만만치 않은 저녁만찬비를 자비로 몽땅 거리 계산해 버리자 친구들은 감사의 박수세례로 화답했다.
펜션으로 돌아올 때는 바닷가를 따라서 걸어서 왔는데 바다에 빠지겠다는 정신 나간 아가씨를 119 구조대원들이 설득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역시 광란의 해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골프장에서 정비 기술자로 일하는 친구가 집에서 가져온 양주 한 병으로 모두는 적당한 입가심을 즐긴 후 낯선 타지에서도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물론 기분 좋게 취한 총무의 가벼운 취중연설이 없었다면 밋밋한 추억여행이 될뻔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십 년 총무는 너무 과하다면서 다음 총회 때는 무조건 교체해 달라고 하소연하듯 말했지만 친구들은 멀뚱멀뚱 딴 곳만 쳐다보면서 어서 연설이 끝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총무감을 구할 길이 없는 우리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기왕 고생하는 김에 한 십 년만 더 고생하자는 대단히 이기적이지만 불가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ㅋㅋㅋ
과거 같았으면 밤새 퍼마시고 아직도 뻗어있을 시간이었지만 웬걸 약속된 아침 여덟 시가 되자 모두는 멀끔한 차림으로 버스에 올랐다.
그래도 우리 중에서는 검색의 달인이라 자부하는 허 부장이 아침식사를 위하여 물색해 둔 순두부 맛집이 있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어차피 예약은 되지 않았으니 운전대를 잡은 버스기사 마음이었다.
기사는 버스가 주차하기 좋은 더 넓은 마당이 있는 순두부집으로 향했는데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들어온 식당치고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순두부 전문 식당이었다.
직접 콩을 쪄서 순두부를 만든다는데 그 맛이 일반적인 순두부 맛 이상이었으니 제대로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식사 후 어제 식당종업원이 일러준 대로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생가터를 향하여 곧바로 직행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허균의 생가터라기보다는 차라리 27세에 요절한 그의 누이 허날설헌의 기념관이라 할만했고 입이 쩌억 벌어질 정도의 생가터 크기로 볼 때 허균 아버지 허엽의 가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허엽의 호가 초당이고 최초로 초당두부를 고안한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방금 우리가 아침밥을 먹었던 곳도 초당두부집이었다면 어쩌면 초당의 후손이 운영하는 식당이었을 수도?
다음으로 이동한 신사임당의 생가는 조금 전에 봤던 허균의 생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그 규모가 진짜로 엄청났다.
굳이 그 사정을 따져본다면 광해군 때 허균이 역모죄로 참수당한 후 그의 아버지 초당도 부관참시를 당했던 반면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은 후세에 충신으로 기록되었으니 두 집안의 흥망성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신사임당역을 맡았다는 배우 이영애의 손도장 앞에서 모두는 희희낙락 즐거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오만 원권 지폐에 등장하는 신사임당 아주머니 덕분에 난생처음 화폐전시관을 둘러보는 호사를 누렸다.
경포대를 둘러보는 것으로 강릉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25인승 미니 버스는 논스톱으로 남쪽으로 내달렸다.
점심식사는 만장일치로 포항 물회로 정해졌는데 난데없이 현대자동차 귀족노조 친구가 물회는 울산물회가 최고라고 자랑질을 하기에 하는 수없이 중간 경유지가 변경되었다.
문제는 허기진 배를 훔켜쥐고 오후 세시가 다되어서야 도착했다는 사실이고 벌칙으로 울산 고래고기 한번 얻어먹자는 친구들의 엄포에 귀족노조 친구의 머릿속 셈법이 복잡해졌다.
결국 자신 때문에 친구들의 늦은 점심이 미안했던지 물회값을 몽땅 계산하는 호의를 배 푼 후 곧 정년을 앞둔 울산친구는 잘 가라며 부산을 향해서 떠나가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엉덩이가 배겨서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어 잡을 정도로 암만 생각해 봐도 25인승 미니버스의 승차감으로는 장거리여행으로는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톨게이트 요금이 아까웠던지 빠른 고속도로를 마다하고 굳이 국도를 고집하면서 무려 이십 분이나 늦게 도착하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뒷자리 앉은 친구가 오늘 기사 팁은 없다고 수군거렸지만 마음 좋은 총무가 어떻게 마무리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출발할 때는 호기롭게도 반팔차림이던 친구가 결국 안 되겠던지 친구의 겉옷을 빌려 입고서야 북방감기에 걸리지 않고서도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허 부장은 다음부터는 경비가 좀 들더라도 여행사 패키지로 다녀오자고 했고, 총무는 피곤했던지 한 5년 후쯤이나 계획하자면서 당분간 여행애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어쨌든 늦깎이 초딩 수학여행 겸 환갑맞이 기념 여행으로 말미암아 그렇잖아도 막연한 친구사이가 더욱더 돈독해진 기분이다.
친구들 다음 여행 때까지 우리 모두 건강하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