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인생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봄에는 아들 녀석 장가보낸다고 난생처음 혼주가 되어서 진땀 흘리며 혼주덕담까지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름에는 조용히 넘어가자는 나의 거듭된 당부로 우리 집 거실에서 식구들만 둘러앉아 소박하지만 특별한 예순 번째 생일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해의 마지막 달인 십이월의 한 날, 기어이 맞이인 딸아이까지 결혼식을 올리고야 말았던 아무튼 요란법석을 뜬 한 해가 분명했다.
한 해에 내리 아들과 딸을 연거푸 결혼시킨 스토리를 말하자면 작년 이 맘 때까지만 하더라도 딸아이의 결혼식만 논의하던 중이었다.
외모며 성격이며 나를 그대로 빼어닮은 딸아이가 6년을 사귄 회사동료와 결혼을 결심하고 이 사실을 가족에게 통보했다.
두 사람의 회사 사정상 12월 중순이 아니고서는 2주가량의 해외 신혼여행을 계획할 수 없어 1년 전부터 예식장을 예약하고 결혼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한 살 아래 남동생의 여친이 자기들은 언제 결혼할 거냐고 아들에게 물었고, 아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여러모로 아직도 준비가 부족한 자신의 처지상 선뜻 결혼을 추진할 수도, 막무가내로 회피할 수도 없는 이 어려운 의제를 우리 부부에게 들고 왔다.
이때 우리 부부는 너무 경제적으로만 따지지 말고 너희들 마음이 중요하니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화사하게 웃는 그 밝은 표정과 긍정적인 마인드에 이미 우리 부부는 흠뻑 빠져있었기 아들의 여친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섰던 까닭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추진력은 정말 놀라웠다.
양가 부모의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예식장을 예약하고 상견례를 밀어붙였다.
식장도 1년 후 누나가 결혼하기로 예약된 바로 그 예식장으로 정해졌고, 신접살림은 4년 후 분양을 전제로 임대하는 가성비 좋은 작은 임대아파트였다.
얼떨떨한 가운데 1년 사이 아들딸을 모두 출가시키자니 솔직히 민망한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어려운 숙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는 홀가분함과 뿌듯함도 있다.
그 사이 가만히 생각만 해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경사가 생겼다.
아이들 셋을 계획하는 예쁜 며느리가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내년 6월 즈음이면 우리 집에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릴 예정이다.
벌써부터 들뜬 기분으로 예비 할머니를 준비하는 집사람은 아이 돌봄 양성학원을 다닌다며 분주하고, 난 마당 한켠을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기 위해서 즐거운 구상 중이다.
이럴 때 불현듯 그동안 엄두를 못 내었던 새로운 생각이 일었다.
올해가 다 가기 전, 훌쩍 삼 미터를 넘긴 무려 이십 년을 묵혀두었던 답답하던 사철나무 울타리를 가차 없이 쳐내기로 마음먹었다.
기왕에 할 숙제라면 올해 안에 마무리하자는 생각의 열정은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뭔가 확 트인다는 느낌이 주는 상징성은 대단했다. 무성했던 숲이 사라지자 드디어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고, 어두컴컴하던 일대가 훤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제 붉은말이 달려온다는 2026년 병오년이 다가온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거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귀에 걸린다.
우리 모두 새로운 생명체의 울음소리와 강렬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희망찬 새해가 되기를 차분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