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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Mar 11. 2023

민간요법에 대한 주의사항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현대 과학을 신뢰하는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입장은 언제나 확고부동하다. 제4차 코로나 백신 접종일로부터 정확히 4개월이 경과하던 날 제2 기가로 알려진 동절기 백신을 접종했다. 백신을 접종하던 지난해 늦가을 무렵만 하더라도 분위기가 정말로 예사롭지 않았다. 접종율이 10%를 약간 웃돈다고 했지만 눈을 씻고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사전예약을 신청할 때부터 주변의 분위기가 싸한 것 같더니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무슨 별종을 바라보는 듯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백신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모두가 무언의 저항운동에 동참하고 있었던 거다.


여러 차례 백신을 맞았던 사람이든, 한 번도 안 맞은 사람이든, 이미 열 명 중 일곱은 코로나에 감염된 전력들이 있었던 터라 이구동성으로 백신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던 시점이었다. 이쯤 되니 와이프가 발끈하고 나섰다. 독립투사도 아닐진대 굳이 먼저 나설 일이 아니지 않느냐며 강한 톤으로 만류하고 나섰다. 주변의 반응을 살펴가면서 대체로 모두 접종하겠다고 하면 그때 가서 동참하자는 논리를 전개했다. 일반적 군중심리에 편승코자 하는 뭇 생명체들의 보편타당한 생존방식이었지만 난 물러서지 않았다.


의료계에서 동절기 백신을 강조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현대과학에 대한 무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막연한 군중심리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어설프지만 물리주의자로서의 자존심이 한몫을 거들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온 사람은 달랑 나 혼자뿐이었다. 덕분에 최소한의 대기시간도 없이 곧바로 의사 면담에 일사천리로 접종이 이루어지는 뜻밖의 특혜가 주어졌다. 주변의 싸한 분위기 탓이었을까?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접종 후 몸살을 그것도 이틀에 걸쳐서 끙끙 앓는 대 변고를 당한 후에야 겨우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용감무쌍하게도 제5차 백신을 접종했다는 내 몸의 자부심은 그다음 날부터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역시 과학의 힘은 위대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았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무슨 대단한 갑옷이라도 맞춰 입은 듯 자신감 넘치는 나의 태도를 눈여겨본 사람은 눈치 빠른 와이프였다. 그동안 반백신 기류에 편승하여 오락가락하던 와이프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더니 결국 과학진영으로 은근슬쩍 넘어오는 결단을 단행했다. 어쨌든 지금은 국가에서 공짜로 제공해 주는 BA.5 기반의 최신형 갑옷으로 맞혀 입고 당당하게 코로나에 맞서고 있다. 순전히 운빨이었겠지만 우리 부부는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쏟아지는 빗속을 거닐면서도 아직까지 한 번도 비를 맞지 않았던 그 어렵다는 코로나 비감염자 출신들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어가는 큰길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과학과 비과학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는 상황에서는 한치의 좌고우면도 없이 즉각 과학 진영으로 가담한다. 과학의 편에 서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불굴의 신념이 생겨난 것은 비과학 진영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종류의 폐해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온갖 감언이설로 사람들의 귓전을 간지럽히지만 대개의 경우 그 속셈은 따로 있는 뻔하디 뻔한 혹세무민의 결론이 무지무지 싫었다.


그래서 비록 어설프지만 물리주의자가 되었고 매사에 과학적인 판단에 배팅하려는 습성이 생겨났다. 당연히 과학적인 판단의 주요한 근거가 되는 것은 그 영역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의 조언이다. 특히 내 몸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담당 주치의의 지시사항이라면 메주로 콩을 쑨다고 해도 일체의 의심 없이 믿고 따르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허구한 날 과학과 비과학으로 편 가르기를 시도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두 영역 사이를 적당히 들락거리면서 허허실실 유별나지 않은 보통의 상식으로 살아가는 와이프와는 때때로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도 삼십 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웬만큼은 서로 적당이 맞추면서 살게 되었지만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던지 매번 민간요법의 유혹에 흔들리는 와이프의 오래된 관성 앞에선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만다.  


정기적으로 당뇨 약을 먹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병원의 처방약 외에는 자칫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아무리 강조해 봐도 누군가의 속삭임에 힘없이 무너지기 일쑤다. 출처도 알 수 없는 흑염소탕 진액을 박스째 사들고 와서는 무슨 보약이랍시고 열심히 먹고 있길래 담당 주치의의 허락을 받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무슨 몸보신하는 것까지 일일이 허락을 받느냐며 되레 면박을 다. 언젠가는 고가의 한약 때문에 크게 다툰 적도 있었다. 돈이 아까워서 그러느냐는 와이프의 항의까지 받았지만 겨우 설득하여 담당 주치의와 상의한 후 결정하기로 했다. 물론 주치의는 당뇨환자가 무슨 한약이냐며 펄쩍 뛰었고 주치의의 처방으로 종합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겨우 일단락된 적이 있었다.


이럴 때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한의원에서는 웬만해서는 따로 한약을 권유하지 않는다. 하도 궁금하여 그 사정을 물어보았더니 굳이 필요성이 없으니까 권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답변이었다. 대부분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침이나 뜸 물리치료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비용면에서도 부담이 없다. 이 특이한 한의원에서 만나게 되는 지인들의 안도하는 표정을 통해서 그동안의 속앓이를 어렵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가까운 선배의 간경화 증세가 악화되어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긴급 호송된 적이 있었다. 일 년 여의 치료 끝에 그 선배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을 때 한동안 민간요법에 대한 주의사항을 안내하는 도우미 역할을 자임했었다. 선배의 전언에 따르면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주치의의 지시사항을 잘 이행한 환자들은 대체적으로 회복의 길로 들어서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집요한 민간요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주치의 몰래 민간 약물을 복용한 환자들은 대부분 죽어서 나갔다는 것이다.   


링 위에서 힘겹게 싸우는 선수를 대상으로 서로 다른 두 명의 코치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함을 질러댄다고 상상해 보면 그 결과를 어렵사리 짐작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내 몸을 치료하는 감독관은 내가 신뢰하는 단 한 명의 과학자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그 감독관의 지시 하에 일목요연하게 약물에 대한 처방이 내려져야만 내 몸을 과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음이다. 그러함에도 사사로이 또 다른 감독관의 귓속말에 솔깃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필시 약물의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하여 내 몸에 대한 과학적인 치료는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현대 과학을 신뢰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허비하는 환자들을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생각해 보라! 이것은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의 문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이 분명하다. 소곤소곤 귓속말로 전해지는 민간요법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면 오래된 관습이란 참으로 고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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