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인근에 사는 육 십년지기 고추친구가 찾아와 자신도 블루베리 농장을 만들고 싶다며 자문을 구했고 난 피씩 웃으며 농장 여기저기를 함께 둘러보며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우리 두 사람은 엇비슷한 시기에 서로 비슷하지만 판이하게 다른 종류의 농장을 조성했는데 블루베리와 아로니아였다.
아로니아에 비하여 초기투자비용이 꽤 많이 들어가는 부담은 있었지만 난 고심 끝에 블루베리를 선택했고, 친구의 선택은 아로니아였다.
값비싼 피트모스 대신 그냥 일반 흙에서 식재하는 아로니아는 묘목값도 저렴하고, 병충해도 거의 없어 해마다 수확량도 엄청났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맛이었다.
과즙이 달콤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블루베리와는 달리 아로니아의 영양가는 최고지만 한마디로 맛이 없어 그냥 생과일로는 먹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제아무리 건강에 이로운 것이라도 맛이 없다면 그 많은 수확물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도시민들에게 있어 먹는 방법이 까다로운 영양가 높은 열매는 판로의 문제로 직결될 수밖에 없었고, 농가입장에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지하는 수지타산의 의미는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근로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에 반해서 블루베리는 당도와 질감 사이즈만 잘 키우면 찾는 이들이 많아 판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블루베리는 해마다 2월 중순 이후 가지치기를 하고, 3월 초를 전후하여 전년에 만들어진 새순가지를 잘라서 삽목을 한다.
제아무리 삽목 초짜라 할지라도 다음의 이 세 가지만 준수한다면 거진 70%가량은 뿌리를 내리게 할 수 있는 특별할 것도 없는 기술이다.
첫째, 손바닥만 한 크기로 새순가지들을 잘라서 피트모스 상토에 꽂는다.
둘째, 차광막을 덥은 따뜻한 비닐하우스의 응달 환경에서 키운다.
셋째, 매일 물을 주면서 충분히 수분을 공급한다.
그런데 곧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어차피 매년 가지치기는 해야 하고, 그 가지를 이용한 삽목의 성공률이 높다 보니, 채 몇 년을 못 가서 블루베리 화분을 설치할 공간이 부족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블루베리의 생육환경에서 햇빛과 통풍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필연적으로 공간부족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초짜 아닌 초짜농부는 어쩔 수 없이 멀쩡한 과수나무를 베어내는 후회막심의 헛수고를 몇 년을 간격으로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십 년 전, 폭 4미터 길이 60미터의 작은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시작했지만 재작년에는 그 옆의 과수나무를 옮겨 심고 같은 크기의 블루베리 하우스를 추가로 조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또 그 옆의 과수나무를 이번에는 아예 베어내고 세 번째 하우스를 조성한다고 진땀을 흘리고 있었을 때 불쑥 친구가 찾아왔던 거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지난 일들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식재한 묘목이 성장하여 나중에 열매를 달게 되었을 때의 판로 문제를 등한시한 후회가 있었고, 난 매년 늘어나는 삽목의 특징을 간과한 후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진갑을 맞이한 시기, 아직은 교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우리 두 사람은 큰 위안을 얻으며 함께 웃었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친구에게 한마디 보태준 조언은 인생의 매사가 그렇듯이 농장의 조성단계에서부터 최소 십 년 후를 내다보는 긴 안목을 말해주었다.
시야를 눈에 보이는 지금 당장의 근시안으로 맞추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은 진갑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 두 사람이 이미 뼈저리게 느껴온 터다.
비록 지금은 필요 없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미래를 대비하여 처음 구상의 최소 3배 정도는 미리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일러주었더니 친구가 단번에 알아들었다.
하긴 식재한 지 어느덧 십 년이 넘은 아까운 사과나무 수십 그루를 밑동까지 베어낸 참혹한 현장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니 친구의 이해도는 빠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