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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May 27. 2023

잉어와 블루길의 차이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지난 일요일, 올해 들어서는 처음으로 강변 낚시터를 찾았다. 어느새 강건너의 에코델타시티 개발현장은 거대한 신도시로서의 형체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겨울 이후 낚시터 근방의 방치된 물가를 평정하여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녀석은 놀랍게도 잉어무리였다. 자신들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사람이라는 동물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팔뚝만 한 잉어 몇 마리가 사람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는 기이한 행동을 했다. 난 낚싯대와 뜰채를 내려놓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본래 이 강은 토종 붕어와 잉어 천지였다. 그런데 이천 년대 이후 외래종 베스가 한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붕어는 씨가 말라버렸다. 붕어가 사라진 강은 베스천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상왕노릇을 하는 녀석은 베스보다도 덩치가 몇 배로 큰 잉어였다. 한때는 붕어낚시터로 이름을 떨치더니 외래종 베스가 강을 점령한 후로는 전국에서 베스전문 낚시꾼들이 몰려들 만큼 또다시 떠들썩한 베스낚시터가 되었다.


하지만 자연생태계는 그야말로 역동적인 잔인한 정글지대였다. 어디서 유입이 됐던지 오육 년 전부터 베스를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외래종 블루길이 한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붕어처럼 베스도 씨가 말라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왕노릇을 하고 있는 녀석은 고유의 토종 어종인 잉어다. 몸집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잉어는 언제나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군림하지만 쪽수에서 밀리는 처지라 상왕대접만 받으며 유유자적 살아간다.


외래종은 대개 식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짜릿한 손맛만 본 후 다시 놓아주지만 잉어는 다르다. 그래서 입맛을 다시는 와이프의 표정을 상상하면서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우기 시작했다. 마침 오늘따라 잉어가 좋아할 만한 초대형 지렁이도 잔뜩 잡아왔으니 잉어 몇 마리쯤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예감이 밀려왔다. 이 강에서 민물낚시를 한 구력으로만 따지자면 족히 오십 년 세월이다. 잉어를 끌어올릴 튼실한 뜰채까지 준비되었으니 무시무시한 손맛을 즐길 생각에 온몸에서 전율이 몰려왔다.


드디어 기세도 좋게 낚싯대 하나를 물속으로 던졌다. 그런데 어라? 낚싯대가 던져졌지만 잉어무리들은 나의 행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여전히 유유자적이다. 저희들을 먹거리로 체포하려는 위층 먹이사슬의 행위에 반응하지 않는 잉어무리가 멍청한 건지 영악한 건지 영 기분이 묘했다. 마치 여기가 자신들의 영역이라는 듯 푯대 주변을 유유히 헤엄치면서 잔뜩 약을 올려 됐다. 낚싯바늘을 몸속에 숨긴 채 물속에서 꼬랑지를 흔들어대는 지렁이를 먹기 위하여 달려드는 것은 온통 블루길뿐이다. 손바닥만 한 블루길들이 쉼 없이 입질을 해대는 통에 금세 망태기가 묵직해졌지만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지? 미끼가 문제인가? 잉어가 좋아할 만한 싱싱한 대형지렁이를 낚싯바늘 하나당 통째 한 마리씩  아낌없이 갈아주었다. 낚시꾼의 간절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잉어는 마치 물속의 이치를 통달이라도 했다는 듯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블루길 간의 속고 속이는 구경거리를 즐기는 형국이었다. 멍청한 것은 낚시꾼과 블루길이었고 잉어는 한마디로 영악한 영물이었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영물이 분명했다.


반나절이 지날 무렵에서야 낚싯바늘을 지렁이의 몸속에 숨기는 미끼로 잉어를 낚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행위임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잉어조차도 자신의 몸에 이롭지 않은 것은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하물며 지적생명체라고 자부하는 우리 호모사피엔스들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심지어는 담뱃갑 표지의 흉측한 사진을 보면서도 꾸역꾸역 그 위해한 행위를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설픈 물리주의자도 이십 대를 전후하여 무심코 시작한 담배와 술을 무려 25년 30년을 함께했지만 내 몸을 해롭게 하는 백가지가 무익한 존재임을 잘 알면서도 단절할 수가 없었다. 멍청한 베스나 블루길처럼 말이다.


나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면 난 이미 그들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뜻일 테다. 보건소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6개월 만에 겨우겨우 니코틴의 의존성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지 인내하고 있을 뿐 완전한 단절은 요원한 듯하다. 대부분은 역겨운 냄새로 전환되었지만 아주 가끔씩은 지금도 고소한 향내가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십 년 전,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첫날에 난 두 손을 번쩍 들고 주님께 항복을 선언했다. '항복! 항복! 무조건 항복합니다, 다시는 주酒님께 대들면서 까불지 않겠습니다, 벌칙으로 십 년간 단주하겠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술독에 빠져 살던 술 주정뱅이가 십 년의 금주를 선언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이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충격적인 한 사건이 원인이었다. 소주도 부담스러워 겨우 맥주나 즐기던 사람이 웬일로 폭탄주를 내리 열 잔이나 마시는 객기를 부리던 연말이었다. 택시를 타고서도 집을 찾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블랙아웃상태에 빠지는 참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일생일대 딱 한 번 겪어본 황당한 경험이었지만 잠시나마 알콜성치매증상을 직접 체험하게 되면서 몸서리쳐지는 공포가 엄습해 왔다.


공자가 천명天命을 알게 되었다는 그날에 난 내 몸이 보내는 황색 경고등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지금생각해 봐도 당시 그 경고등을 놓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몇 안 되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행동이었다.


30년간 동거 동락했던 술잔을 멀리하고자 했을 때 가장 염려가 되었던 것은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해선 한두 잔의 술기운이 절실할 때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적당량으로 줄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욱 힘든 것임을 깨닫고는 부득이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날의 항복선언 이후 내 입은 주酒님의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담배와 마찬가지로 십 년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단지 인내하고 있을 뿐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하였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단 한 잔만 어떨까 싶지만 십중팔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도로 아미타불이 될 것이니. 쯧쯧!  


그래서 십 년 금주의 목표는 부득이 평생의 개념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십 년 정도 도를 닦으면 酒님과 맞짱을 떠드라도 주객이 전도되지 아니하고 점쟎게 술잔을 컨트롤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택도 없는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다. 소싯적에 술통에 빠져 살아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줄인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그야말로 신의 경지다. 알코올기운이 스멀스멀 밀려들어오는 와중에서도 술잔을 들기 이전의 초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내 경험칙상 그것은 사람의 의지로는 불가능한 경지다. 딱 한 병만 먹기로 하고 시작한 술자리지만 막상 한 병을 마신 이후는 금세 생각이 달라진다. 그래서 차라리 소박한 인간의 경지인 주酒님을 멀리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쭈욱 그러면서 살기로 작정했다.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경험칙에 의하면 우리의 몸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평소의 익숙한 것들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새로운 것들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려는 유별난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호기심으로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나의 의지로 능히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자만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서 내 몸은 심각한 의존성의 나락에 빠져들고 말았다.


중독이 된 것이다!  누구라도 습관성 중독증상에 빠지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쉬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서 내가 술을 마시는지 술이 나를 마시는지 헷갈리게 된다. 의존증상을 치유하기 위하여 그것을 멀리하려는 순간 우리의 몸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극렬하게 저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해결책은 반복된 시도뿐이다. 처음엔 맹렬히 거부하다가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활습관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하나의 습관으로 받아들이며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게 될 테니까.


한번 길들여진 습관을 교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습관으로부터 비롯된 문제는 다소 어렵고, 지루하고, 힘들더라도 좋은 습관으로 교정함으로써 해결하는 도리밖에는 없다. 


그렇다! 적어도 우리 몸의 문제만큼은 대부분이 습관의 문제다. 우리 몸을 해롭게 하는 것도 그 습관으로부터 비롯되었고 그것을 이겨내는 것 또한 고약한 그 습관을 솎아냄으로써 가능하다. 술, 담배, 마약, 비만, 단 음식, 짠 음식, 스트레스 등등의 나쁜 습관대신 꾸준한 운동, 정기적인 건강검진, 싱겁게 먹는 습관, 독서, 영화감상, 성실, 정직, 이타심, 긍정적인 마인드, 인자한 생활태도 등등의 좋은 습관으로 교정함으로써 말이다.


이 세상을 통틀어서 가장 소중한 딱 한 가지를 꼽으라면? 구구절절 생각해 봤지만 매번 결론은 단순하게 다가온다.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럼 대체 무엇이 나 자신인가? 나를 정의하려고 할 때 언뜻 내 몸과 구분된 별개의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이천사백 년 전 플라톤의 주장처럼 의식, 정신, 마음으로 불리는 관념이 진정한 나이고 몸은 그것의 부속품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명쾌하게 말해준다. 의식 정신 마음이라고 불리는 것은 기억과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작용현상일  뿐 내 몸이 진짜배기 나라고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울증이나 치매 조현병과 같은 마음의 병조차도 실상은 우리 뇌 내부의 문제다. 따라서 치료제 또한 뇌신경의 세포를 조율하는 형태로 개발되었거나 개발되고 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유지하고 싶다면 기억과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우리의 뇌를 끊임없이 활성화시키면서 살아가야 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온전한 기억력과 인지능력의 유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니까.


평소 정기적인 뇌 MRI검사와 인지능력 검사를 통해서 뇌건강의 상태를 세심히 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독서가 됐든 글쓰기가 됐든 새로운 외국어 공부가 됐든 좌우지간 두뇌운동을 열심히 시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위험한 작업이나 운동을 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헬멧을 착용하여 무슨 일이 있더라도 머리만큼은 보호해야 한다. 심장이나 다른 장기들은 이식이라도 받을 수 있다지만 마음의 역할을 담당하는 머리는 그럴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 내 몸이 진짜베기 나 자신이고 그래서 이 세상을 통틀어서 내 몸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은 불멸의 진실이다. 오히려 철석같이 믿었던 우리의 의식은 갑자기 닥친 위기의 상황에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 버벅거리기 일쑤다. 마치 고장 난 컴퓨터처럼 의식의 오작동 현상이 발생하여 어이없는 짓을 하곤 한다. 세월호와 이태원참사의 현장에서 보여준 선장, 서장, 구청장의 황당한 횡보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효과적인 재난 대비를 위해서는 위기발생 시의 대응 매뉴얼대로 반복적인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몸을 익숙하게 만들어놓아야 한다. 비록 의식은 버벅거릴지라도 우리의 몸이 알아서 작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21세기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머지않아서 뇌의 이식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휴대폰의 유심칩을 새로운 공기계에 장착하는 것처럼 건강한 육체에 이식한 뇌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다. 그래서 인류가 열어갈 무궁무진한 미래의 모습이 몹시도 궁금해진다.


어찌 되었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내 몸이다. 내 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면 내가 가장 아끼고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 역시도 내 몸이어야 할 것이고, 내 몸을 건강하게 지키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소프트웨어 즉 마음의 기능을 담당하는 우리의 뇌가 최고로 중요하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면서, 더욱더 열심히 운동하면서, 더욱더 열심히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더욱더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런저런 현란한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말한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의 몸만큼 소중한 보물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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