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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pr 08. 2023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나의 어릴 적 꿈은 농부 작가였다. 다른 친구들은 한결같이 대통령과 장군을 선호하던 7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확실히 유별난 아이였다. 대부분 농사를 짓던 작은 시골마을에서 방과 후 집안의 농사일을 거들 던 친구들이 부러웠다면 웬일인가 싶을 테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마을에서만 열두 번의 이사를 해야 했던 가난한 집안의 아이로서는 자신의 땅에서 농사짓는 농부가 최고로 부러웠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몸까지 허약하여 운동이라곤 젬병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봐도 끔찍한 어린 시절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고 농부작가를 꿈꾸게 된 것 같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당연하다는 듯 문예반을 찾아갔지만 그 이후 나의 오랜 꿈은 서서히 잊혔다. 다시 귀농을 하게 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무렵 불현듯 어린 시절의 꿈이 되살아났다. 어쨌든 지금은 어엿한 중치정도의 자경농부가 되었고 비록 자비출판이었지만 시집과 수필 단행본을 출간한 경험도 있다.


그런데 아직도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늘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도전한 것이 장편소설이었다. 치열했던 삼 년의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소설 동북공정’을 완성했지만 책으로 출간하는 것은 역시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나마 출판사와 절반씩 비용을 분담하는 조건으로 딱 천권을 출간하여 용케도 완판 했지만 2쇄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어쨌든 자비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였으니 아직도 꿈은 미완성이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온 세상을 덮쳤을 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8개월을 씨름한 끝에 헤밍웨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쓰레기에 불과한 초안을 완성했다. 1차 수정작업에만 무려 5개월이 걸렸다. 곧바로 2차 3차 수정작업에 돌입하여 각 3개월씩 반년만에 마무리되었다. 이 시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속의 엔도르핀이 최고조로 샘솟던 정열적인 글쓰기의 시간이었다. 여전히 큼큼한 냄새가 풍겼지만 확실히 악취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저기 엉성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다시 온 정신을 집중하여 4차 수정작업에 돌입했다. 한 달 반에 걸친 지난한 작업이 끝나자 이제는 제법  작품으로서의 틀을 갖추어갔다. 웬만큼 원고로서의 골격이 갖추어지자 이제부터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5차 수정작업은 보름으로 대폭 앞당겨졌고 6차부터는 속도에 탄력까지 붙어 4일 만에 마무리됐다. 다시 7차부터 11차까지 3일씩, 마지막 12차는 6일에 걸쳐서 다시 한번 더 촘촘하게 들여다봤다. 모든 이들이 잠든 새벽 무렵, 묵직함이 느껴지는 원고를 바라보며 촉촉해진 눈가의 물기를 훔치던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기나긴 코로나기간 PC자판기와 씨름한 지 2년 만에 드디어 글자 수 48만 자에 원고지 2700장 분량의 장편소설이 완성됐다.


하루 중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밤낮없이 몰입하여 탄생한 원고였다. 하지만 이름 없는 무명작가의 작품을 쾌히 받아줄 용감한 출판사는 없을 듯했다. 이런저런 경로로 업계의 사정을 전해 듣기로는 그 사이 종이책 시장의 규모가 1/4로 쪼그라들었다는 하소연들이 이어졌다. 유튜브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종이책을 읽으려는 독자들보다 오히려 출간하려는 작가들이 더 많은 실정이란 말까지 들었다.


동북공정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십 년 전의  작업방식이라면 몰라도 살짝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때 정색한 표정으로 돌변한 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미안하지만 그 방식은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분명 이 말은 사전에 맘속으로 준비된 말은 아니었다. 심중 깊숙한 곳으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만큼 내 작품에 대한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던 순간이었다. 숨이 턱턱 막혀서 죽을 것만 같은 사투의 시간을 지나온 장편소설 작가들의 심정을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진짜베기 장편소설작가로서의 고고한 자존감을 지금 내가 흉내 내고 있었다.    

  

이때 온라인 플랫폼이 눈에 들어왔고 때마침 문피아의 역대급 공모전이 예고되었다. 장르불문이라고 하기에 멋모르고 덜컥 참여하게 됐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장르불문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작년 5월부터 8월까지 매일 한편씩 모두 100회를 연재했지만 결과는 생각만큼 신통치 않았다. 제목도 젊은 감각에 어울리게끔 '떴다! 삼일특공대'로  교체하는 등 나름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입선에도 들지 못하는 처참한 결과를 맛보아야 했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삼천 여 편의 공모작들 대부분이 판타지물인 현실에서 50편의 입상작에 일반소설이 차지할 공간은 없는 듯했다. 온통 인생을 재탕 삼탕으로 다시 살아가는 판타지물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인생을 딱 한 번만 살아가는 일반소설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참혹하리만큼 초라했다.


일반소설의 주무대인 종이책 대신 온라인 플랫폼의 웹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들의 억눌린 감정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서는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과거의 특정시기로 되돌아갈 수 있어야 했다. 정상인의 시각에서는 특권이며 반칙이었지만 거기서나마 그들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며 열광했다. 답답한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해방구가 바로 판타지소설이었고 스마트폰이라는 유용한 도구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딱 한 번만 인생을 살아간다는 보편적인 진실이 이토록 지루한 스토리로 치부될 줄은 꿈에서도 몰랐지만 여기서는 정상적인 인생이 차라리 애꾸눈으로 취급되었다.


비유하자면 나이트클럽으로 착각한 노티들 몇 명이 젊은이들의 공간인 클럽에 불쑥 끼어들어서는 우리도 좀 봐달라고 애처롭게 솟짓하는 형국이라고 할까?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여러 플랫폼들을 섭렵해 보았지만 역시나 온통 비정상이 정상을 비웃는 판타지의 천지였다. 인생을 딱 한 번만 살아가는 일반소설은 거저 구색이나 맞추어주는 서글픈 현실임을 처절하게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그날부로 게시물을 모두 내리고 작금의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역시 이번에도 어릴 적 나의 꿈은 여전히 미완성인 채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022년도 기울고 새로운 태양이 동해바다를 힘차게 솟아올랐을 때 불현듯 묵혀두었던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나의 꿈속까지 비집고 들어온 원고 속의 등장인물들이 제발 세상에 나가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어 이대로 사장시킬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다시 들여다본 원고는 객관적으로 원고를 평가할 수 있는 혜안을 만들어주었다. 아직도 꽉 채워지지 않은 여전히 부족한 부분들이 선연히 들어왔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온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2월의 첫날부터 시작된 제13차 수정작업이 13일의 처절한 사투 끝에 드디어 마무리됐다. 어라! 그런데 이게 뭐야!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사실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내 몸속의 엔도르핀이 마구마구 샘솟는 대단히 신나는 작업이었다. 내가 나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으니까.


다시 열흘에 걸쳐서 밤낮 없는 14차 수정작업에 나섰다. 세상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여전히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일주일에 걸친 15차의 수정작업을 끝으로 이제는 정말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온통 머릿속은 과도한 칼질을 후회하는 생각들로 꽉 들어차게 되면서 혼란이 찾아왔다. 다시 몇 부분을 복원하는 식으로 5일에 걸친 16차 수정작업도 끝이 났다. 그런데 웬걸 또 부족했다. 도대체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5일의 지난한 시간 속에서 17차 수정작업을 이어나갔다. 사실 이때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던 극한의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놈의 숫자가 문제였다. 극도로 예민한 시점에서의 18이라는 숫자가 108 번뇌를 떠올리게 했던 거다. 두고두고 미련을 남기느니 이 숫자를 뛰어넘어야 하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갔다. 또다시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온 정신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5일에 걸친 마지막 수정작업을 그야말로 갓난아기 때 젖 먹던 힘까지 총동원하여 심혈을 기울여서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4월 1일 새벽 무렵, 드디어 글자 수 43만 자에 원고지 2300장 분량의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금 태어났다. 이젠 정말 일말의 후회도 남지 않았기에 정성껏 시놉시스도 작성했다. 줄거리와 기획의도 홍보방향을 작성하면서 원고의 내용에 적합하게끔 본래의 제목도 되찾았다. ‘독도가 물리친 동북공정’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내 글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열두 개의 소설전문 출판사를 엄선했다. 점심까지 걸러가며 원고투고를 마무리했을 때 물밀 듯 미친 감회가 몰려왔다.


물론 나도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어 알만큼은 알고 있다. 요사이처럼 척박한 출판환경에서 그것도 장편소설이 투고의 형식을 빌려서 선택을 받기란 로또에 당첨될 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검토기간이 최장 3개월은 걸린다고 했으니 그래도 딱 6월까지만 기다려볼 참이다. 어쩌면 미련의 여지조차도 기대할 처지가 못되겠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볼 생각이다. 그러다 올해가 가지전 소박하게 딱 열 권 정도만 출판하면 어떨까 싶다. 내 인생의 소장용으로 말이다. 물론 이번에도 자비출판이겠지만.


정말 한 점의 후회도 남기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 긴 시간 극한의 상황으로까지 몰아붙이며 온 정신을 집중하여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뿌듯함도 맛보았다. 그래서 이제 더는 어릴 적 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드디어 오래된 나의 꿈을 이룬 것 같다. 난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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