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아도 같은 사람을 일주일에 7일을 만나는 건 나 같은 사람에게 꽤 힘든 일이다. 매일 얼굴을 보며 같은 장소에 가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일상을 보내면 대화거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나눌만한 이야기가 없어 의미 없는 말만 주고받는 상황이 나는 너무 어색하다. 게다가 매일 만나는 만큼 나의 시간을 뺏겨 내가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만큼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다.
그렇지만 이번 연애는 예외다. 동동이가 떠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번 여름에 가면 다음 여름에나 볼 수 있는데 미리 많이 봐둬야 한다는 생각이 내 본능을 이겼다.
월요일에는 유명한 시장을 찾아갔다. 우리는 둘 다 음식을 좋아했기 때문에 기대감에 부풀어 시장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걸 좋아하면서 입은 짧은 나였지만 양이 많은 동동이를 믿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길거리 음식 너덧 개 고르고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시식회 마냥 골라 온 음식 모두 맛본 다음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시장에서 빠져나왔다.
화요일에는 동동이가 사는 동네로 갔다. 우리는 근처 카페에 자리 잡고 각자 할 일에 몰두했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데이트냐고 물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 친구가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좋을 때가 있다. 그리고 상대가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거든.
나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동동이는 개인 약속에 나를 초대하곤 했다. 낯을 많이 가려서 번번이 거절하다가 수요일에는 동동이 친구와의 점심 약속에 함께했다. 더운 날 뜨거운 국밥을 후후 불어가며 천천히 먹고 있는데 동동이 친구가 내게 물었다.
”동동이 미국 가면 어떻게 해요?“
”저도 제 할 일 해야죠.“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아쉬움이 묻지 않은 나의 무심한 대답에 동동이가 상처받은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목요일에는 동동이가 은행에 볼 일이 있다고 해서 따라갔다. 번호표를 받고 차례를 기다리는 중에 졸음이 쏟아져 동동이의 어깨를 빌렸다. 전날 밤을 새우다시피 했더니 비몽사몽 아주 정신을 못 차리던 중이었다. 동동이가 반가운 목소리로 누군가와 인사하는 소리에 묵직한 머리를 어깨에서 떼고 바로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동동이가 인상 참 좋으신 아저씨 한 분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아버지란다. 카페인도 소용없었던 잠이 싹 달아났다. 모임 사람이라고 소개했지만 동동이 어깨에 올라간 내 머리통을 이미 보신 건 아닐까, 공공장소에서 숭한 모습을 보인 건 아닐까, 너무 당황해서 인사는 제대로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나서도 놀란 마음에 피곤을 한동안 잊을 수 있었다.
금요일에 짧게 점심만 함께했고 토요일은 다른 약속 때문에 보지 못했다. 일요일이 되자 오랜만에 보는 듯한 기분에 괜히 더 예뻐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열심히 분칠하고 꾸몄다. 배고팠던 우리는 만나자마자 일단 식당으로 향했고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야 드디어 마주 보고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동동이 입에서 예쁘다는 말이 나왔다. 정성 들여서 화장한 보람이 있네, 한번 올라간 입꼬리는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자, 이제 사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