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표정도 몸짓도 알 수 없으니 가끔은 전화가 무서웠다. 분위기를 못 읽고 말까지 못 알아듣는 나와 대화하기 꺼리는 건 아닐까,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또 전화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몰라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한때는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첫 전화는 피했고 저장되지 않은 번호는 절대 받는 법이 없었다. 급한 연락이면 메시지라도 남기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동동이와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화가 기본이다. 그래서 걱정이 앞섰다. 우리는 언제, 얼마나 자주 연락할까?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다른 환경, 다른 위치에서 있으니 공통 주제도 없을 텐데, 과연 서로 공감은 할 수 있을까? 할 말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머릿속에 가득한 수많은 물음표에 어떠한 답도 내리지 못하는 사이 그는 지구 반대편 땅을 밟았다.
신기하게도 한 사람이 눈을 뜨면 다른 한 사람은 잘 준비할 시간이니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할 수 있는 완벽한 시차였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통화했다. 물론 이것도 한때겠지.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일상이 바빠지면 하루에 두 번에서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한두 번, 연락은 점차 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큰 착각이었다. 동동이는 통화가 어려운 상황에도 꼭 짬을 내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 목소리 들으려고 전화했지~”
내가 자는 동안 알찬 하루를 보낸 동동이가 막 아침 햇살에 눈뜬 나에게 하루 브리핑을 한다. 동동이가 자는 동안 재미있는 하루를 보낸 나는 아직 잠이 덜 깨 가라앉은 목소리의 동동이에게 신나게 썰을 푼다. 완전히 정반대의 시차 덕분에 우리의 이야기보따리는 줄어들 줄 몰랐다. 특별한 일 없는 하루를 보냈더라도 물음표 살인마라고 자부하는 내가 평소에 생각해 왔던 가벼운 의문을, 때로는 무겁고 깊은 질문을 던지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수다쟁이 커플에게 대화 주제가 고갈될 일은 좀처럼 없다.
하지만 가끔 중단되는 대화, 그 공백의 순간이 오면 나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보통 동동이의 말에 적당한 반응을 찾지 못해서 고장 나버린 내가 만들어 낸 정적이었다. 그럴 때면 꼭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대화를 못 이어 나가서, 나와 대화하는 게 재미가 없어서, 내가 싫어지면 어쩌지?’ 어쩔 수 없는 걱정쟁이는 매일 의미 없는 걱정만 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