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의 나는 아주 온화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편. 그런데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시기가 있다. ‘왜 이렇게 예민해, 생리하냐?’가 아니라 ‘생리 준비 중이냐?’라고 물어보길 바란다. 물론 이런 식으로 물어본다면 내 안의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아무튼 나는 생리 전 증후군이 유난인 편이다. 신체적으로 오거나 정신적으로 오거나, 운이 나쁘면 둘이 같이 찾아오는데, 짧으면 하루 이틀, 길게는 2주 내내 시달리기도 한다.
며칠 동안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밑바닥을 친 날이었다. 무슨 말을 들어도 고깝게 들리고 어떤 의욕도 들지 않아 우울감에 휩싸여 툭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 막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려는 동동이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내 기분이 잔뜩 묻은 무채색의 목소리로 전화에 응했다.
“있잖아,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서 많이 틱틱거릴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기분이 태도가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을 건넸다. 내가 당신을 함부로 대할지도 모르니 나중에 연락해도 된다는 의미도 담았지만, 한편으로 목소리는 듣고 싶은 내 욕심 때문에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으응? 언놈이야! 내가 다 혼내줄게!” 동동이는 내 건조한 말투에 굴하지 않고 상황극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놈 아니고 년인데!” 우리는 별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았고, 우리의 대화는 점차 말보다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캄캄했던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고, 물 먹은 듯 묵직했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한참을 깔깔거리다가 문득 ‘맞다, 나 기분 안 좋았었는데?’ 그렇게 내 안에 있던 괴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 시기의 나는 부딪치면 부딪치는 대로, 외면하면 외면하는 대로 상처를 받는다. 그러니까 어떤 의도도 없는 상대방의 행동에 쓸데없이 혼자 상처받고 실망하는 것이다. 동동이는 화로 가득 찬 나를 외면하지도, 들이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절대 달래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던 호르몬에 지배된 기분을, 내 안의 괴물을 겨우 전화 한 통으로 가라앉혔다.
길지 않은 통화가 끝났다. 동동이는 학교에 갔고, 나는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