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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엘로 Aug 26. 2024

내 안의 괴물을 다루는 방법

 평소의 나는 아주 온화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편. 그런데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시기가 있다. ‘왜 이렇게 예민해, 생리하냐?’가 아니라 ‘생리 준비 중이냐?’라고 물어보길 바란다. 물론 이런 식으로 물어본다면 내 안의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아무튼 나는 생리 전 증후군이 유난인 편이다. 신체적으로 오거나 정신적으로 오거나, 운이 나쁘면 둘이 같이 찾아오는데, 짧으면 하루 이틀, 길게는 2주 내내 시달리기도 한다.


 며칠 동안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밑바닥을 친 날이었다. 무슨 말을 들어도 고깝게 들리고 어떤 의욕도 들지 않아 우울감에 휩싸여 툭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 막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려는 동동이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내 기분이 잔뜩 묻은 무채색의 목소리로 전화에 응했다.


 “있잖아,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서 많이 틱틱거릴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기분이 태도가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을 건넸다. 내가 당신을 함부로 대할지도 모르니 나중에 연락해도 된다는 의미도 담았지만, 한편으로 목소리는 듣고 싶은 내 욕심 때문에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으응? 언놈이야! 내가 다 혼내줄게!” 동동이는 내 건조한 말투에 굴하지 않고 상황극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놈 아니고 년인데!” 우리는 별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았고, 우리의 대화는 점차 말보다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캄캄했던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고, 물 먹은 듯 묵직했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한참을 깔깔거리다가 문득 ‘맞다, 나 기분 안 좋았었는데?’ 그렇게 내 안에 있던 괴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 시기의 나는 부딪치면 부딪치는 대로, 외면하면 외면하는 대로 상처를 받는다. 그러니까 어떤 의도도 없는 상대방의 행동에 쓸데없이 혼자 상처받고 실망하는 것이다. 동동이는 화로 가득 찬 나를 외면하지도, 들이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절대 달래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던 호르몬에 지배된 기분을, 내 안의 괴물을 겨우 전화 한 통으로 가라앉혔다.


 길지 않은 통화가 끝났다. 동동이는 학교에 갔고, 나는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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