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엘로 Aug 29. 2024

애칭 아닌 이름

 ‘여자 친구랑 같이 있어.’


 데이트 중에 가끔 오는 친구들 전화에 동동이는 ‘여자 친구’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물론 나도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남친’이라는 단어를 남발하지만, 이상하게 동동이 입에서 나오는 ‘여자 친구’는 낯간지러웠다.


 어려서부터 연인 관계에서 종종 사용되는 대부분의 용어가 참 어색했다. ‘데이트,‘ ’사랑,‘ ’애인.‘ 내 입 밖으로 꺼내는 법이 없었고, 타인이 내뱉는 말에 남몰래 소름이 돋곤 했다. ’자기,’ ‘여보’ 같은 애칭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미 부르라고 만든 예쁜 이름이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난 애칭이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릴 때가 가장 좋았다.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말이다. 동동이는 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모순되게도 나는 타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어려워했다. 어렸을 때 남자아이들의 성을 빼고 언급하면 ‘너 걔 좋아하냐?’라며 놀림 받아서였을까, 특히 남자 이름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 내뱉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동동이를, 내 사람을 ‘야, 너’로 부르기는 정말 싫었다. 결국에 나는 동동이를 ‘즈기요,‘ ’아즈씨,’ ‘그쪽’ 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게 참 아쉬웠다.


 전화기 너머 동굴같은 목소리로 ‘하늘이는,’ ‘하늘이가’ 소리는 몸이 근질거리고 뇌가 부르르 떨리게 좋았지만, 한편으로 동동이를 동동이라 부르지 못하는 내게 자꾸만 실망감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동동이’라고 부르기로 마음먹고 머릿속으로 그 결심을 여러 번 되뇐 뒤 전화를 받았다. 대화를 한참 이어가다가 드디어 타이밍을 잡았다. 크흠,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숨을 들이마시며 한 템포 쉬었다. 그리고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소리 내 말했다. ‘동동이는…’


 연습하면 안 되는 게 없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동동이를 ‘동동이’라고 부르고, 제삼자에게는 ‘남자 친구’라고 당당하게 소개한다.

이전 09화 내 안의 괴물을 다루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