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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엘로 Sep 02. 2024

함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생일

 나의 생일은 겨울, 동동이의 생일은 봄이다. 여름 한정으로 만날 수 있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서로의 생일을 함께 할 수가 없다. 원래 기념일도 잘 챙기지 않고 우리가 사귄 날조차 기억 못 하는 나지만 아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사귀고 나서 처음 맞는 내 생일이 다가왔다. 친구들 생일을 챙기는 일은 내 기쁨이지만 정작 내 생일을 축하받는 건 부끄러워서 생일 홍보조차 하지 않는 편이다. 동동이에게도 언젠가 날짜를 알려주고 한두 번 상기시켜 준 게 다였다. 그것도 생일과 겹쳤던 여행 일정을 알려주며 지나가는 말이었다.


 생일이 시작되는 자정, 동동이는 누구에게 질세라 전화로 축하해줬다. 짧은 축하 전화였지만 바다 건너 멀리, 다른 시차에 살면서도 잊지 않고 한국 시각에 맞춰 연락했다는 게 참 고마웠다.


 생일날 오후 2시, 또다시 미국에서 온 전화가 울렸다. 꿈나라로 가기 전에 굿나잇콜인 걸까, 종종 있는 일이라 아무 의심 없이 통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익숙한 노래 반주가 들리더니 굵은 목소리로 ‘겨울 아이’가 시작되었다. 광대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기분 좋게 듣다가 동동이의 노래가 점점 길어지자 갑자기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혹시 언제까지 불러? 은근슬쩍 재촉하자 동동이는 노래에 맞춰 개사하며 대답했다. “거의 다 끝났어요~”


 오후 2시, 미국은 자정이었다. 그러니까 저쪽 나라에서의 내 생일이 시작되었다며 한 번 더 축하하려고 전화했단다. 상상도 못 한 계산법이지만 축하는 다다익선이었다. 전화를 끊으니 생일 선물이라며 이것저것 잔뜩 보내줬다. 평소에 손발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탄다는 내 말을 쉬이 넘기지 않고 기억해 두더니 열이 나오는 발 안마기도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생일만 되면 ‘뭐 갖고 싶어?’ ‘필요한 거 있어?’ 묻곤 하는데, 사실 갖고 싶은 것이든 필요한 물건이든 내가 직접 사는 편이 더 쉽고 효율적이다. 짧은 손 편지든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기프티콘이든, 혹은 아무리 쓸데없는 물건이어도 약간의 시간 동안 나를 생각하며 선물을 골랐다는 것만으로 이미 고마운 일이다. 그러니 나도 스치듯 말했던 걸 응용한 선물은 얼마나 감동이었으리라.


 선물 받은 안마기에 발을 넣었다. 10분가량 마사지를 받으며, 머릿속에 생일 축하 노래를 재생하고 모래가 잔뜩 묻었던 발을 주무르던 동동이를 떠올린다. 함께할 수 없지만 함께하는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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