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이가 미국으로 간 지 7개월 정도 지났다. ’벌써라고‘ 할 만큼 빠르게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라고 할 만큼 얼굴을 보려면 아직 한참 남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항공편을 알아본다는 말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기뻤다. 매일 연락하면서도 질리지 않고 짧고 간단한 전화도 반가워 호들갑 떠는 나날도 좋았지만,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함께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는 게 그리웠다. 현란했던 동동이의 운전 솜씨를 구경하며 근교로 놀러 갔던 기억과 깊은 대화와 함께 눈물을 쏟으며 먹었던 치킨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랬던 일상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기쁘고 기대됐다. 벌써부터 신나서 같이 먹고 싶은 음식과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해 보기도 했다.
걱정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날 약속에 나가는 것처럼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질까 봐 걱정되었다. 매일 같이 목소리 들으면서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나는 10년 넘게 친한 친구와 단둘이 만나기로 한 약속에 나갈 때도 같은 고민을 한다. 손에 들어오는 작은 기기를 통한 연락은 부담이 덜하다. 비언어적 요소가 부족해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정정할 기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동동이를 만나 실수를 하고 수습하지 못해 쩔쩔매는 나를 자꾸 상상하게 된다. 괜한 걱정인 걸 알지만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버릇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불안했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한 지 1년이 지난 때이기도 했다. 여전히 무엇 하나 이룬 게 없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불안감이 스멀스멀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동동이는 떠나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만 많고 하고 싶은 건 아직 찾지 못했던 나를 응원했다. 1년이 넘도록 헤매고 있는 나를 여전히 응원해 줄까? 나조차도 가끔 한심하게 느껴지는 나를 그저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응원해 주었으면 하는 욕심을 부리게 된다.
갖은 생각으로 복잡한 내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동이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만 하루면 보고 싶었던 얼굴을 화면이 아닌 현실에서 볼 수 있다. 좋은 의미로, 또 나쁜 의미로도 가슴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