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 생일을 챙기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생일 주간에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시간이 나지 않는다면 주로 그 친구의 단골 카페 기프티콘 선물.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이니 너무 정 없다고 하지 마시길. 물론 가끔은 물건으로 보내기도 하지만 선물하면서도 상대방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불안해서 꼭 한 마디 덧붙인다. ‘맘에 안 들면 당근 해~’ 어차피 이제 네 것이니 네 맘대로 하란 의미이자, 상대방이 필요 없다는 내색을 보여도 나는 괜찮다는 자기 세뇌도 포함된 한마디이다.
어느새 봄이 되어 동동이의 생일이 다가왔다. 일단 같이 시간을 보내지는 못한다. 미국에서 쓸 수 있는 기프티콘? 아마존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은 있는 듯 보였지만, 동동이가 아마존 단골이라 하더라도 너무 성의 없는 생일 선물 아닌가. 그리울만한 한국 음식들은 한인 마트에서 충분히, 다양하게 구할 수 있었고 동동이가 필요한 물건은 스스로 사는 편이니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동동이의 생활을 분석하기로 했다.
미국에 가자마자 차부터 구한 동동이었다. 한국에서도 동동이 차는 은은한 향으로 가득했던 것이 떠올라 캡슐 형태의 차량용 디퓨저를 찾았다. 나중에 택배를 부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액상 디퓨저는 가연성이라 배송이 안 된단다. 디자인이 예뻐서 고른 형태였는데 운이 좋았다. 백화점에 가서 직접 향도 맡아보고 후기도 찾아보며 신중하게 고르고 여느 때처럼 한마디 붙였다. ‘향 마음에 안 들면… 친구 줘버려~’
동동이는 학생이다. 시험 기간에는 밤을 새우는 게 일상이기도 했다. 새벽에 공부하다가 쉴 때 한 번씩 전화하면 밥이 제일 중요한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늘 출출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가끔은 새벽에도 영업하는 편의점에 가서 간식거리를 사 오기도 했고, 또 가끔은 어쩔 수 없지, 하며 없는 대로 공부를 이어갔다. 이거다. 평소에 좋아하던 수제 초콜릿을 급히 주문했다. 과자나 초콜릿 항목은 통과 못 할 수도 있다는 우체국 직원 말에 벌벌 떨었지만, 초콜릿은 무사히 동동이에게 전달되었다. ‘동동이 취향 아니면, 같이 공부하는 친구 먹여!’ 역시 나를 지키는 한마디를 빼놓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선물은 손 편지였다. 나의 시그니처 프레첼 그림과 유사한 스티커가 있는 편지지 세트를 구매했다.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무작정 써 내려 갔다. 10,000km가 넘는 거리를 체감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면서 처음과 변함없는 모습에 대한 고마움을 담았고, 말로는 절대 하지 못했던 온갖 표현을 글자로 적어냈다. 이 선물에는 한마디를 붙이지 않았다.
동동이는 내가 보낸 선물을 혹여나 도둑맞을까 학교를 마치자마자 귀가했다. 무사히 도착한 선물을 확인한 동동이와 막상 통화하려니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내용 너무 좋다,’ 말 한마디에 또 사라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