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서둘러서 집으로 향했다. 초여름이어도 이리저리 움직이고 힘쓰면 나도 모르는 새 땀에 젖어버린다. 이 꼴로 만날 수는 없지, 들뜬 마음을 애써 누르며 몸을 씻었다. 살면서 이렇게 빠른 샤워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정신없이 준비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재미있어했다.
거의 다 와 간다는 동동이의 전화에 급히 나가는 나에게 엄마가 한 마디 건넸다. ‘왔대? 창밖으로 한번 봐야겠다.’ 그러지 마, 소리 지르며 집을 나왔다. 큰길로 빠르게 걸어가는데 저 멀리 하얀 차가 보였다. 미끄러지듯 내 앞에 멈춰 선 차에서 동동이가 내린다. 양팔을 벌리는 동동이와 머뭇거리는 나. ‘엄마가 보고 있을지도 몰라!’ 우리는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서로 바라보았다. 일단 탈까?
근처 카페를 찾아 목적지로 설정한 뒤 빠르게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운전하는 동동이의 오른손이 놀고 있어 내 쪽으로 끌어왔다. 몇 개월 만에 잡아보는 두툼한 손인지, 여전히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긴장이 녹아내렸다. 오랜만에 만나서 소심한 내가 낯을 가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은 역시나 기우에 불과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자마자 신나서 이야기하기 바빴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멈출 줄 몰랐다.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서야 제대로 서로의 얼굴을 살필 수 있었다. 피곤으로 반쯤 풀린 눈을 보니 안쓰러울 뿐이었다. 시차 적응도 채 끝나지 않았을 텐데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달려온 것이다. 보러 온다고 했을 때는 마냥 좋기만 했는데 재워달라고 소리 지르는 눈꺼풀을 보니 또 미안했다. 동동이는 1리터 짜리커피를 순식간에 들이켰다. 그리고서 우리는 맨날 나눴던 일상을 다시 되새기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나눴고 틈틈이 장난도 치며 쉼 없이 이야기했다. 동동이는 우리의 대화에, 나에게 집중을 잃지 않았다.
그대로 저녁까지 먹고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동동이는 이제 20분이 넘는 거리를 또 운전해서 귀가해야 했다. 미안함보다 행복함이 컸다면 이기적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