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토토
거지 같은 인간관계 하나가 나를 휩쓸고 간 뒤 나는 반년을 깊은 이불속에서 보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우울증이었는데. 독일어 한마디 못하는 나는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다정하게 나를 위로해 줄 남편 따위도 없고 상담할 친구나 멘토도 없는 상태라 결국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애견인들이 들으면 천인공로할 노릇이지만 정말로 나는 강아지의 안위 따위는 눈꼽만큼만 생각하고 내 안위가 가장 중요했다. 나를 햇볕으로 인도해 줄 작은 온기 있는 털북숭이가 필요했다. 워낙에 치대는 건 질색이라 강아지는 평생 키울 생각도 없고 고양이집사가 되는 게 평생에 원이었지만 고양이는 나와 산책을 가주지 않는다. 고양이는 지혼자 산책을 나가고 안 가도 되고 또 나가는 걸 싫어하는 녀석들도 있다. 내 유일한 목표는 내가 이역만리타국에서 자살하지 않고, 햇빛을 쬐러 나가고, 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이었다. 소형견 중에 그나마 키우기 쉽다는 강아지들을 둘러봤는데. 개 키우는 것을 반대하던 남편은 기왕이면 개다운 개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내 우울증 때문이라지만 같이 사는 반려인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중형견 중에 개다운 개 스타일로 생긴 개들을 물색하다가 하필이면 난이도 상에 속하는 보더콜리가 당첨됐고 우리 집에 토토가 오게 됐다. 토토는 어떻게 보면 귀엽고 어떻게 보면 슬퍼 보이는 얼굴을 가졌는데 성격도 어떻게 보면 착하고 어떻게 보면 멍충한 강아지다. 어떻게 보면 역쉬 보더콜리는 똑똑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어떨 때는 아무래도 우리는 속아서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보콜리라고 부른다. 우리 집 바보콜리 토토는 두 달 만에 화장실을 마스터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하고 성실한 강아지인데 식탐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고 깡이 좋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러나저러나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 반은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밖에서 걷게 되었고 내 통장은 텅장이 되었으며 우리 가족은 외식 한번 하고자 하면 토토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세상에,, 햇빛 한번 보고 걷자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되었지만 토토는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웃게 하고 나를 걷게 하고 오늘 하루도 나를 살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