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운명을 기쁘게 보내다 가는 거야
결정을 내린 순간부터 다른 삶을 살고 있으며 느껴지는 새로움과 안정감에 물들어 녹아있는 만족감과 내가 사랑했던 인생을 포기했다는 착각과 동시에 의도치 않는 떠나감을 맞이할까 봐 불안한 인생 두 가지 자아가 매일을 다투고 있다
나는 열등감과 우울감이 과하게 섞여 넘쳐흐르는 그 색깔 그 자체였다 뿌옇고 찐득해서 잘 떨어지지도 않는 보라색, 내 감정을 죽여놓으려는 듯 의도적으로 섞여있는 검은색 딱 봐도 그런 색감을 가진 사람이었던 거 같다
지금도 몸 곳곳에 몽고반점처럼 자리 잡아있는 듯 보기도 싫고 떼어내버리고 싶지만 잘되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나'에 인생을 잘 살지는 못한다 남들을 비교선상에 두는 것 사실 그런 사람 너만 있는 거 아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기준점 또한 내가 선망하고 존경하던 사람들에 삶을 따라가지 못하면 난 곧 잘못된 인생을 살아온 듯 인장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찍어내고 머릿속에 "내 인생은 그릇 됐어" 라며 각인한 채 살아왔다
당연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알면서도 건 것이다 '성장'이라는 빌미로 주체적인 감상은 계속 죽여가며 타인의 삶이 곧 정답인 듯이 살아왔다
지금 이렇게 많은 불안감과 동시에 새로운 안정감을 느끼는 이 순간이 사실은 두렵고 또한 무섭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모르는 삐뚤한 결정과 모난 판단 나만의 기준에서 정해놓은 비교선상에 틀린 인생과 맞는 인생을 정해놓고 살아왔으니 정말 버릇없는 생각이지만서도 떨치기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무의식 속에 계속 박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냈으니 그 생각이 어디 가겠나 나 또한 내가 정해놓은 '틀린' 인생을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지금 나 자신과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래 안다 정말 잘 알고 있다 내 신념이 정말 그릇된 신념이라고 난 남에게 잣대를 내밀며 잘못된 인생을 판단해 왔던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러우면서도 눈물 나게 반성하고 있다 내가 그런 인생을 택해서가 아니다 내 신념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아니라 자신에 인생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면서 남에 인생을 하찮게 판단했던 나 자신이 정말 안타깝고 화가 나서 뼈 아프게 반성하고 있다
정말 짧은 시간 내에 너무 많은 게 변해왔다 떠남을 각오하고 떠남을 맞이하며 떠남을 당하고 새로운 만남을 맞이하고 색다른 사람들을 들여오고 있는 이 과정
갑작스레 글을 쓰기 시작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며 춤에 방향성도 달라지고 인생의 목표도 뚜렷해지며 말에 무게를 정수리부터 느껴지는 이 순간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나를 만들고 너를 만들기 위해 존재해야만 했던 시간이다
정해진 운명을 살아갈 각오라면 이 악물며 치열하게 사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아름다움을 잔뜩 만끽하며 순환되는 시간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
언어로 소리를 뱉으며 기쁜 마음으로 한마디 더 뱉어보자 나에게도 너에게도 지나온 시간과 빛바래 변한 신념들과 추억들은 마음 깊게 묻은 채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기쁘게 맞이하자
나에게도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이며 지금 이걸 보는 모두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죽음은 동화이자 가까운 친구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아름답게 가지 않을 이유 또한 없을까 잔뜩 부끄러워하며 자책하며 그 또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우리 모두 동하지 못해도 나와 내 주변인들은 꼭 그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