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남을 인지하고 한번 더 깨어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입력된 감정은 익숙한 기억인 것처럼 그 장면, 색감, 풍경을 떠올린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장면들을 기억으로 되새기고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니, 인간이 가진 능력 중 가장 뛰어나며 형용하기 어려운 능력이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 산물을 깨고 깨움을 의식한 후 한번 더 깨야한다.
익숙함은 곧 안정감을 안정감은 곧 도태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직접 겪지 못한 경험을 자기가 겪은 것 마냥 말하고 느끼고 하는 것들은, 삶을 정착하고 유지하기 위한 생존 방식이지 그 이상과 마주하려면 우리는 깨움을 의식해야 한다.
요즈음 뇌리에 박힌 생각 중 하나이다. 춤을 추기 위해 우리는 무의식을 잡고 질문한다.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깨닫고, 재질문, 재질문, 재질문.. 멍청한 반복의 연속을 우리는 의식하고 이행한다.
이게 있어 보임을 멋들어지게 꾸며만 내는 자와, 진짜를 말하고 움직이고 들을 수 있는 자들에 차이라고 느낀다.
자학은 부정이 아니다. 자학은 아름다운 것 그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몸에 담아낼 수 있는 게 곧 우리의 숙명인 것이다.
말은 무식하다. 텍스트로 꾸며내는 자신은 텅 빈 본인을 숨기기 위한 수치스러운 행위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본인의 위치를 모르는 것은 수치다. 수치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자존감을 꺼내는 건, 본인 배를 가르고 장기를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움직임은 고귀하다. 고귀함을 말로 가린다는 것은 얼마나 자만한 생각인가. 너는 그저 숨기기 바쁜 도망자, 도망을 도피로 감싼, 공포를 피해 진짜 도망간 너를 마주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상처를 깊게 파는 것이 아닌, 그저 우리 이야기를 솔직하게 뱉는 것뿐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