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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빵 Feb 28. 2024

아빠 시작

나와 똑 닮은 생명체가 탄생했다

    2022년 08월 11일 13시경. 이미 약속된 시간에 만나기로 한 나의 딸. 수술로 출산을 하기에 기약 없는 기다림이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통은 없다. 그저 약속된 시간에 아내는 분만실로 향했고, 나는 그보다 더 늦게 분만 대기실에 아기와의 첫 대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기억해 보면 그다지 긴장을 하지도, 안절부절못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10분에서 20분. 출산에 필요한 시간이다. 뭐랄까, 똑딱똑딱 시간에 맞춰서 진행되는 예측 가능한 출산을 보면서 긴장감을 가지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빠 들어오세요."


    안내받아 들어간 방안에는 허리께까지 오는 카트가 있다. 카트 위에 그녀가 있다. LED 등이 눈이 부신 건지 뜨지 못하는 눈. 억울한 듯이 뻐끔 거리는 입. 불규칙하게 얼굴과 손에 붙어 있는 태반. 손금이 선명한 작은 손. 아내가 실로 삐뚤빼뚤 '동동이'라고 수를 놓은 비니 모자. 온몸은 새하얀 천으로 둘둘 싸여 있다.


"안녕. 아빠야."


    다른 말 없었나? 준비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그렇게 심심하고 재미없는 첫인사를 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 손을 잡고 흔들면서 "아빠 안녕"이라고 화답해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좋아서 우시는 거죠?"


    그래, 나도 예상은 했다. 나는 필히 울 거다. 멋없게. 소리 내지 않으려 애쓰며 콧물을 흘리며 눈물도 같이 흘릴 것이다. 마흔이 넘으니 감정을 주체 못 하는 건지 아니면 갱년기인지 혼자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나곤 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숨죽여 오열을 했지 아마?

    아빠의 첫 임무, 동영상 촬영을 마무리 지으며 "됐습니다"라고 한마디 한다. 사실 제대로 발음도 못했다. 첫인사 이후 한마디 말도 없이 콧물 들이마시기만 하는 갱년기 아저씨의 촬영을 끝까지 기다려준 간호사 선생님이 고마웠다.


    이제 아기는 신생아실로 옮겨진다. 그곳에서 2차 접견이 이루어진다. 비니와 뚜껑을 제거한 카트에서 나는 아기의 얼굴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끝이 처진 갈매기 눈썹. 뭉특한 콧끝. 아랫입술보다 발달한 윗입술. 좁은 이마. 광활한 귓불. 나의 유전자 결과를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딸이구나. 닮은 곳을 애써 찾을 필요 없이 첫눈에 내 딸이다. 이런 감탄을 할 동안 신생아실 간호사 선생님은 손가락 10개와 발가락 10개를 확인하여 주었고, 건강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딸의 학교 입학식까지 상상하며 눈물과 콧물을 배출하고 있었다. 질리지도 않고 이놈은 계속 운다.

    "아빠다" 하고 겨우 불러보니, 그 작은 입술로 메에에에하고 염소 소리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었다. 꿈틀대는 팔과 다리,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붉은 혀가 감동적이다.


    시간이 얼마 지난 뒤, 마취에서 깬 아내가 병실로 복귀했다. 생명 탄생의 신비를 몸소 체험한 이에게 남편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수고했어' 뿐이었다. 그리고 감사하다. 나를 아빠로 만들어주어서. 마지막으로 미안하다. 내 유전자가 너무 강했다. 아빠 얼굴 밖에 안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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