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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딸? 아빠 딸!

by 붕어빵

제법 사람의 언어를 갖추어 가고 있을 무렵.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짧게나마 피력하고, 항의하고, 요구할 수 있을 무렵. 나의 딸은 아빠에게 이리 와, 저리 가, 기다려, 하지 마, 닦아 줘 등 자신이 하는 말에 취해 더욱 말하는 것이 재밌어지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는 아빠도 재밌다.

이 정도면 되겠지. 충분하겠지. 충분하다 못해 넘치겠지.라고 생각할 즈음 나는 그동안 숨겨왔던 나의 욕심을 아이에게 요구했다.


"누구 딸?"


두 눈을 마주치고 강렬한 안광을 내면서 딸에게 그녀의 소속을 묻는다. 아빠가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은데 전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흔들리는 눈빛의 그녀.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갈피를 못 잡는다.


"누구 딸." 그녀의 답이다. 그저 아빠가 한 말을 리슨 앤 리피트(Listen & Repeat)하고 있다. 괜찮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 자, 무엇이 모자랐는지 확인해 보자. '누구'라는 뜻은 이미 알고 있다. 사진을 보고 누구야?라고 물으면 아빠, 할머니, 엄마, 삼촌 등 정확히 대답한다. 문제는 '딸'이다. 나의 아이는 자신을 가리키는 대명사 '딸'을 모르는 것 같다. 그 후로 틈만 나면 아이 이름 대신 '딸'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하루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건넸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즈음이었다.


"아빠 딸!"


이야! 됐다! 나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내가 원하는 그 답을 얻었다. 2002 한일월드컵 안정환 정수리 헤딩 역전골 마냥 리액션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나의 아이는 자신이 정답을 말했음을 직감했을까. 그 이후 틀리는 일이 없어 '아빠 딸!'을 외치게 되었다. 이 좋은 걸 나만 볼 수는 없었다.

어린이집에 등원하러 가서, "누구 딸?"

아이 할머니 집에 가서, "누구 딸?"

편의점에서 딸기 우유를 사며, "누구 딸?"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며, "누구 딸?"

그냥 길거리 걷다가, "누구 딸?"


"아빠 딸!"


내 딸의 목소리로 내 딸이 내 딸이라고 말하는 순간이 그렇게 짜릿하다. 타인이 듣고 놀라며 귀여워하는 모습을 나의 뇌세포 하나하나 골라가며 즐겼다. 그렇게 혼자 딸바보 수치를 한창 올리고 있을 때, 아내가 기습 공격했다.

"누구 딸?"

"엄마 딸!"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일주일 내내 쌓아놓은 나의 성에 아내 혼자 덜컥 올라가서 자신이 지은 성이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는 기분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딸도 대단하다. 아빠가 물었을 때, 아빠 딸. 엄마가 물었을 때, 엄마 딸. 누가 물었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답을 말할 수 있는 능력. 한국인의 생존형 패시브 스킬, 눈치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줬다기보다는 스스로 알고 깨우친 것이다. 본능인가싶다. 아이를 기르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정말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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