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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서 그룹이 중요해졌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육아인들.

by 붕어빵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빠르다는 걸 느끼게 되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빨라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무안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해서 정신줄을 놓으면 아이 성장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육아에 이 한 몸 바치리라. 베스트 오브 베스트 아빠가 되리라. 군대에서도 갖지 못한 마음가짐으로 육아라는 전투에 뛰어든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해왔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아침에 깨워서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어린이집에 등원시킨다. 하원해서 다시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읽어주고 재운다. 휴일에는 어딘가에 가서 뛰어노는 것까지 추가된다. 나는 이 모든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놀아주고 재워주는 것.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밖에 없다. 그래봤자 엄마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빠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육아 스타일이다.


"우리 남편한테 바람직한 아빠상좀 보여줄래(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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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과 동갑내기 딸을 둔 여사친이 내 육아 스타일을 듣고, 보내 온 톡이다. 나는 의아한 듯이 대답했다.

"바람직하지 않아. 보통 다 이렇지 않아?"


잘난 체도 아니고 불행배틀도 아니고 생색내는 것도 아니다. 나도 내가 정말 많이 하는 줄 알았다. 베스트오브 베스트는 아니더라도 2등 아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아내 모임에 나가서 다른 아빠들을 보고 있으면 다 나만큼 한다. 나보다 요리를 잘하는 아빠도 있고, 나보다 잘 놀아주는 아빠도 있고, 나보다 잘 재우고 잘 씻기는 아빠도 많다. 돈 벌어오는 것은 기본 장착이다. 모임에 나가서 아빠들의 대화는 많이 없어도 서로 눈빛으로 동질감을 느끼곤 한다.


"그건 여보가 보는 사람만 그래."


아내의 얘기를 듣자 하니, 육아 그룹도 같은 성향, 비슷한 삶의 모습, 경제 수준, 비슷한 지역끼리 뭉치기 마련이다. 아내가 모이는 그룹은 남편의 육아 참여 수준이 아주 높다는 거다. 독박 육아에 대한 불평불만과 시월드에 대해 뒷담화 하며 육아 스트레스를 푸는 엄마는 이 그룹에 따라오기 힘들다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줄 사람이 이곳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아내의 그룹이 자랑배틀로 보일 수 있다.


그렇게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다들 나이는 제각각이지만 이렇게 모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쿵'하면 저쪽에서 '짝'. 거기서 '왁' 하면 이쪽에서 '깜짝이야'. 이게 돼야 재밌지. 정보를 제공하면 소비하는 사람이 있고, 모이자고 손을 들면 그 손을 잡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공동육아'의 새로운 형태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룹은 앞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내 딸에게도 중요하고, 엄마 아빠에게도 중요하다. 내가 만나고 보는 사람이 곧 내가 될 수 있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감화되는 기특한 그룹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학교, 동네, 소모임 등 시간이 갈수록 더욱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 이건 아이 엄마가 훨씬 잘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설거지 라던지, 많잖아. 나도 남에게 좋은 영향을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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