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아침 먹어야지."
"치카치카해야지."
"옷 입어야지."
딸이라는 이름의 그녀는 침대 위에 엎드린 채로 내 말에 반응이 없다. 그저 여기저기 뻗친 머리칼을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긁으며 쩍 하고 하품을 날릴 뿐. 못 들은 걸까? 아니다. 그동안 같이 눈뜬 아침의 숫자만큼 나는 그녀를 경험해 왔다. 이건 그냥 무시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치카치카하고 옷 입고 TV 볼 건데, 어떻게 생각해?"
그제야 상체를 일으켜 엉덩이를 밀며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흐느적거리는 뱀 같다. 아무 말 없이 나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간다. 이렇게 오늘의 제1차 협상이 종료되었다.
협상이란, 육아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협상이란 것은 '그녀의 행동을 독려하거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시간이 쫓겨 외출 준비를 할 때, 체력이 한계에 달하여 도움이 필요할 때, 밥먹일 때, 재울 때 등. 수시로 그녀와 나는 서로의 협상카드를 가지고 두뇌 싸움을 한다.
TV 볼까?
집안에서 가장 흔하게 펼치는 'TV 시청 카드'다. TV를 볼 때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머리를 묶을 때, 옷 입힐 때, 설거지할 때 등 그녀의 불특정 한 움직임을 봉쇄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 카드에 큰 약점이 있으니, TV를 끄면 반동이 크다. 입도 크고 울음소리도 크고 생떼도 크다. 다 크다.
밥 다 먹으면 수박 줄게.
키즈노트에 "두 그릇을 깨끗이 비웠어요."라는 거짓말 같은 기록이 무색하다. 집에서는 한두 번 떠먹고 안 먹는 그녀. 이럴 때 꺼내는 것이 '디저트 카드'다. 수박, 참외, 포도, 딸기 등 제철 과일도 있고, 망고 같은 열대 과일도 있다. 요구르트, 케이크, 쿠키 등 스위트 계열도 효과가 좋다. 디저트 조건이 걸리면, 그나마 밥을 더 먹는다.
디저트 카드의 가장 큰 숙적이 있다. 할머니다. 할머니의 집은 먹거리 투성이다. 손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고 싶은 할머니는 어디서 누가 줬다는 핑계와 먹어도 괜찮다는 무입증된 논리로 각종 과일과 과자와 빵을 쟁여 두신다. 공급이 폭증하는 공간인 할머니집에서 그녀는 나와 협상하지 않는다. 최대 공급자인 할머니 앞에 가서 앉는다.
어느 순간에는 협박으로 변하기도.
더 이상 제시할 조건이 없을 때, 협상은 협박으로 변하기도 한다.
집에 안 간다고 보챌 때, "아빠 간다, 너는 계속 여기 있어라."
밥 안 먹는다고 버둥거릴 때, "냉장고에 있는 빵 아빠가 다 먹는다."
안 씻는다고 버틸 때, "아빠가 안고서 씻긴다."
협박 뒤에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5...4...3...2...1
누군가는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는 더 큰 조건이 아니면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보상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으로 자랄 수도 있다. 그건 그때 걱정하고 싶다. 일단 내가 살고 보자.
지금이야 대부분 내쪽에서 먼저 협상조건을 제시하지만, 언젠가 그녀가 더 크면 나에게 협상 테이블에 앉으라고 할 날이 올 거다. 나는 그 협상 테이블 중 언젠가 분명히 찾아오고, 가장 길고도 지난한 다툼의 시작이 될, 그녀의 그 말을 기대한다.
"내가 키울게."
우와 생각만 해도 신난다. 어떻게 공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