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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장르

by 붕어빵

육아라는 넓고 험한 세계에 뛰어든 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아빠의 노력과 엄마의 정성으로 우리의 공주는 어여삐 자라서 말하고 뛰고 춤춘다. 경험해보지 못한 다채로운 사건과 감정이 근 3년간 몰아서 들이닥쳤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 시간 때문에 육아 초기 잠 못 들던 기억도 아스라 져가고 있다. 모두 잊어버리기 전에 이렇게 글로 기록하고 있다. 3년이 지나서 문득 이런 여유로운 생각이 들었다.


육아는 장르로 분류하면 뭐가 있을까?


스릴러

세상 모든 사물과 생물이 다 무섭다. 골목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는 차량도 무섭다. 먹이는 것 하나도 무섭고, 담배 피우며 걸어가는 아저씨도 무섭다. 벽에 스며든 곰팡이도 무섭고, 습기 있는 화장실 바닥도 무섭다. 놀이터에서 쌍욕 하며 휴대폰 게임하는 초등학생도 무섭고, 아무 거리낌 없이 아이를 만지려는 시니어도 무섭다. 나는 그중에서도 아이 엄마가 가장 무섭다.


호러

가까스로 아이를 재우고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에도 주의하며 1cm/sec 속도로, 시선은 잠든 아이를 주시하며 뒤로 기어 나와 방문을 조용히 닫는다. 그리고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 "으아아앙!!" 뒷목의 모든 털이 일제히 일어났다.


액션

달린다. 뛴다. 넘어진다. 일어난다. 다시 달린다. 여기에 꼭 들어가는 클리셰가 있다.

"아빠는 도망쳐!" 아빠와의 추격신. 아빠는 항상 도망자 역할이다.


심리 추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뭘 원하는 걸까? 왜 삐쳤을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마이쮸를 주면 아내가 화낼까?


힐링

아이가 잘 때.


괴수, 괴물

말은 필요 없다. 크앙 캬악 크르르르르. 식도를 긁어서 쇳소리를 낸다. 당장 쫓아가서 잡을 수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못 잡는다. 진짜로 무서우면 안 된다. 한 대 맞으면 도망가야 한다. 가끔 마법으로 맞으면 뒤로 날아가야 한다. 아빠 괴수 역할은 규칙이 참 많다.


일상 다큐멘터리

세상 모든 직업을 다 할 기세다. 마트 캐셔, 의사, 버스 기사, 소방관, 경찰. 그런데 정말 뭐가 되려나?


판타지

내 아이는 천재일지도!


뮤지컬

아-기- 상어 뚜루루루뚜루


로맨스

하루에 '사랑해'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하고 많이 듣는데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


전쟁

모든 육아인이 다 똑같이 느낄 거다. 육아는......


에로 빼고 모든 장르가 다 나온 것 같다. 그만큼 육아는 다채롭고 항상 신선하다. 그만큼 지친다.

굳이 장르 하나만 맞춘다면, 이 모든 장르를 다 아우를 수 있는,


성장 가족 드라마.


이 정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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