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가지기 위한 조건
만 3년, 36개월을 넘어가면서 자주 보는 가족에게서 새 구성원을 보는 경우가 있다. 이미 기어 다니고 있는 둘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맑은 눈과 살짝 벌어진 입에 매료되고 만다. 허푸허푸 하면서 분유를 흡입하고 있는 모습. 한손한손 온 힘을 다해 배를 끌며 기어가는 모습. 한쪽 입가에 흐르는 반짝임. 아아아아 하면서 성대를 울리는 모습을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분명 나의 딸도 저때가 있었고 저런 모습이 있었으며 그 옆에 나와 아이 엄마가 있었다. 기억이 단편으로 쪼개져서 초반 2년 동안의 시간이 마치 이틀 같은 느낌이다. 분명 까맣고 빨갛고 노랗고 뭐 그런 희미한 느낌인데, 대체 어떻게 이만큼 기른 거야?
누구에게 물어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이 둘째를 가진다고 한다. 그 처절하고 잔혹했던 올챙이 적을 기억 못 하는 개구리처럼 말이다.
우리 무리 중에 처음 둘째를 가진 아빠에게 대놓고 물었다.
"어떻게 둘째를 가질 생각을 했어?"
"첫째 육아가 그다지 힘들지 않아서요. 그래서 둘째를 가졌는데, 이렇게 힘들 줄 몰랐죠."
너도 다 잊은 거다. 육아에 '그다지 힘들지 않다'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문 열고 나왔어? 문 닫고 나왔어?
엄마는 아이에게 묻는다. "태어날 때, 문 열고 나왔어? 문 닫고 나왔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물으니, 아이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문 열고 나왔으면 둘째가 있는 거고, 문 닫고 나왔으면 둘째가 없는 거야."
어이가 없지만, 재미는 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이렇게 한동안 물으면서 재밌어했다. 어차피 매번 대답이 달랐다.
나의 아이는 분명 동생을 원한다.
친구의 100일 된 동생을 바라보는 나의 아이의 눈은 이미 언니이자 누나의 눈과 닮았다. 한없이 자상한 눈으로 아기와 눈 맞춤을 하면서 조그마한 손으로 더 작은 아기의 손을 살며시 쥔다. 등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말을 걸어준다.
"동생 갖고 싶어?" 우문이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응."
"남자? 여자?" 한걸음 더 나아가는 엄마.
"남자 동생."
몇 번을 물어도 답은 똑같다. 나의 아이는 남동생을 원한다.
키즈카페에 가면 항상 찾는 것은 아기 인형이다. 아기 인형을 안고 어르고 달래며, 먹이고 재운다. 어디에서 배운 건지 아니면 동생을 갖고 싶은 열망인지, 다른 아이들은 건드리지도 않는 아기 인형을 항상 독차지한다.
그러면.....그러면 말이지......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세 바퀴 정도 돌려서 아이 엄마에게 물어봤다.
"나는 살며시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 나이도 있고 말이지. 더 늦으면 힘들 수도 있고 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깐, 둘째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조금은 떠올려 봤어.
"지금 회사에 20년 동안 있을 수 있어?"
내 나이 45세.
내가 다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