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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40개월의 아침 풍경

by 붕어빵

오전 5시 30분. 알람이 울리기 30분 전이지만, 나는 이미 깨어서 '나의 아침'을 시작한다. 읽던 책을 덮고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하고 회사원의 전투복으로 갈아입는다.

오전 6시. 아내를 깨우고 도시락 통에 밥과 반찬을 채워 넣는다. 도시락에 들어간 것과는 다른 반찬을 식탁에 올리고 국을 데운다. 아이패드 미니로 유튜브 하나를 띄워놓고 혈압약과 당뇨약을 반찬삼아 아침을 먹는다.

오전 6시 30분. 아내가 딸을 깨우고 있다. 내가 깨우면 전혀 부드럽지 않은 결말이 되어서 아내에게 맡겨두는 것이 속편하다. 그동안 아침 식사의 뒷정리를 한다.

오전 7시. 아내는 셔틀버스 시간에 맞춰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 오늘따라 딸아이가 잠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침대에서는 분리해 냈지만, 아빠에게 안겨 눈을 감고 있다. 나의 육아 조력자가 떠난다. '나의 아침'은 끝났다.


큰일이다. 집을 나서야 하는 30분까지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상태다. 아침 미션은 4가지. 아침 먹이기, 세수 및 양치, 옷 갈아입히기, 머리 묶기.


아침식사를 고를 여유는 없다. 어린이용 핫도그를 데워서 접시에 가지런히 올리고 요구르트와 함께 내었다. 아이가 혀를 살짝 데고 하는 말,

"뜨거워."

나의 폐야. 일하라. 후우후우후우후우.

야금야금 먹기 시작한다. 나의 조바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치아로 핫도그 껍질 벗기듯이 먹는다. "빨리 먹어"라는 말이 너무 야멸차서 다른 말을 고른다.

열심히 먹어보자. 힘내서 먹어보자. 서둘러 먹어보자. 쌩하니 먹어보자. 후딱 먹어보자. 냠냠냠 꿀꺽.


아이가 핫도그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머리칼에 집중해 본다. 아내처럼 머리묶기에 국가대표가 될 필요는 없다. 조기축구 후보 선수로 충분하다. 포니테일로 한 번에 묶고 옆으로 흘러내리는 잔머리는 핀으로 고정한다. 누가 봐도 아빠 솜씨다. 이 정도면 됐어.


오전 7시 30분. 종료 휘슬이 울렸다. 로스타임이다. 핫도그는 70% 섭취.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었다. 남은 과제는 세수와 양치. 그리고 옷 입기.

유아용 물티슈로 얼굴을 대충 문지른다. 양치는 용기 있게 포기한다. 아내가 준비해 준 옷을 한 꺼풀씩 입혀본다. 내의가 안 보이는데, 뭐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넘어간다(나중에 확인해 보니 아내의 실수다).

"공주 옷 줘!"

안돼. 시간 없어, 그냥 입어. 버둥거리는 작은 머리를 붙잡아 곰돌이 티셔츠를 욱여넣는다. 열심히 만든 포니테일이 망가진다. 내 멘탈도 망가진다.


오전 7시 40분. 한 손에 어린이집 가방, 빈 손으로 아이를 안고 신발을 신는다. 아이 것도 신긴다. 그와 동시에 내 가방을 잊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 앞이다. 욕하지 말자.

"아빠, 편의점 가자!"

편의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빌라 5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가는 동안 아빠 옆구리에 끼인 딸은 비명을 지른다. 납치범스러운 아빠는 빌라촌의 여러 시선을 개의치 않고 어린이집으로 달린다.


오전 7시 50분. 어린이집의 벨을 누른다. 늦었는데도 어린이집 1등 등원이다. 한껏 삐친 딸아이는 눈물이 그득한 눈을 돌리며 인사도 안 하고 들어가 버린다. 내가 미안하다.

드디어. 마침내. 결국에는 '아빠의 아침'까지 끝났다. 이제 '회사원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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