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그러니깐 한국나이로 5살 정도 되었을 때, 동네를 활보하고 다녔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중에 '은혜식품'이라는 동네 구멍가게가 있었다. 집안일하랴 돈 벌러 다니랴 바쁜 부모님은 가끔 잔돈을 쥐어주며 은혜식품에서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라고 하셨다.
시대가 몇 번 변했다. 은혜식품이라는 구멍가게는 없어졌고, 지금 사는 빌라 옆에는 CU라는 편의점이 있다. 딸아이는 편의점을 정말 좋아한다. 편의점에 간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치고 크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다. 하긴, 편의점을 좋아하지 않을 아이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은혜식품을 사랑했던 것처럼.
아이가 인식하는 편의점은 크게 3가지다. 집옆에 있는 편의점. 고래놀이터 옆에 있는 편의점. 시장에 있는 편의점. 전부 CU다. 우연일까. 각각 구매하는 종류와 방문 목적도 다르다.
고래놀이터 옆에 있는 편의점은 아빠랑 놀이터에 놀러 가면서 들른다. 여기서는 망고 젤리와 초코바를 집는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아빠랑 나눠 먹는다.
시장에 있는 편의점은 아빠랑 장 보러 가면서 들른다. 여기서는 초코 우유를 집는다. 유모차를 타고 장을 봐야 하기에 기동성을 중시한 선택이다.
집옆에 있는 편의점은 아빠랑 어린이집 등원하기 전에는 초코송이를 사서 어린이집 친구들과 나눠 먹고, 하원한 뒤에는 초코송이를 사서 편의점 테이블에서 먹는다.
그렇다. 전부 아빠랑 간다. 엄마는 편의점을 싫어한다.
아이 엄마가 편의점을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초콜릿, 캔디, 젤리. 당당당. 아이의 치아 건강과 식습관에 대한 우려다. 그로 인해 아이의 초콜릿에 대한 열망은 더욱 높아졌고, 그 열망은 어린이집에서 정월대보름 소원판에도 표출되었다.
"초콜렛 받고 싶어."
어린이집으로 출발할 준비를 마친 딸아이는 아빠에게 말한다.
"편의점 가고 싶어요."
요즘에는 한마디 더 늘었다.
"약속 잘 지킬게요."
지난번에 '약속 잘 지켜서 가는 거야.'라고 한 말이 시작점이 되었다. 아이 앞에서 말조심 하자. 벌써부터 조건을 미리 달기 시작했다.
집옆 편의점의 문은 5살 아이가 열어 젖히기에 아직 무겁다는 사실을 알 때도 되었는데, 항상 온 힘을 다해서 밀어젖히려고 노력한다. 아빠가 뒤에서 문을 밀어서 열어주면 캔디 섹션으로 가서 한번 고민하고, 과자 섹션으로 가서 한번 고민하더니, 역시나 초코송이를 집는다. 눈치를 보면서 딸기맛 하나 더 집는다.
"친구들과 나눠 먹을 거야!"
2개 고른 것에 대한 당위성을 먼저 말하여 혹시 있을지 모를 아빠의 거부의사를 사전 차단한다. 많이 컸다. 신나게 달려서 욕망의 초코송이 2개를 계산대 위에 올려두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선다. 삑. 결제하자마자 가져간다. 어린이집까지 달려간다.
어느 날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문득 아내가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묻는다.
"편의점에서 초코송이 사줬어?"
입이 짜다. 뒷덜미가 서늘하다. 국자를 쥐고 있는 손이 움찔거려 된장국이 넘쳤다.
"어어, 그냥, 말 잘 들어서, 어어, 밥도 잘 먹고 그래서, 어어 딱 한번, 어어 어어 어어 어어 어디서 들었어?"
듣자 하니,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하원하면서 아이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초코송이를 가끔 가져와서 친구들 나눠주는데, 친구들한테 '고마워'하고 듣는 게 좋은가 봐요."
이제부터 집옆 편의점은 하원할 때만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