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한 시골 병원
딩동~
2022년 가을,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
한 병원에 들어가기 위해, 출입문 초인종을 눌렀다.
내가 동료 신부님들과 사목 하던 마을의 작은 병원인 이곳은, 주로 임종을 앞둔 분들이 많이 입원해 계시는 오래된 병원이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초인종 너머로 간호사의 의심쩍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이 아니라, 성당에서 환자분에게 병자성사를 드리러 왔어요."
"네, 들어오세요."
간호사는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병원에 들어가 복도를 지나 안내 데스크에 도착했다. 간호사는 어떤 환자를 찾는지 이름을 물어보았고 나는 미리 쪽지에 적어둔 이름을 보며 대답했다.
"왼쪽 복도 끝으로 가시면 엘리베이터 있어요. 그거 타시고 3층 올라가셔서 1004호 찾으시면 돼요. 거기에 계세요."
나는 간호사의 말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갔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을 바라보자, 나는 약간 긴장이 되었다. 헛기침으로 목소리도 다듬어보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리고 두 손에 소중히 감싸고 있던 성체(聖體, 예수님의 몸인 빵조각)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내가 이 병원에 온 이유는 한 가지였다. 바로 '병자성사'를 집전하기 위해서다. 병자성사란 몸이 아파 병중에 있거나, 임종이 임박한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서 병의 호전을 위해서나, 또는, 하느님 곁으로 잘 가실 수 있도록 죄의 용서를 청하며 함께 기도하고, 필요에 따라 환자분에게 성체도 모실 수 있게 해주는 가톨릭 신부의 일이다. 가톨릭 신부가 된 후 처음으로 집전하는 병자성사였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1004호 병실을 찾았다. 어떻게 병실 번호도 '천사(1004)'일까 싶은 생각이 들자마자, 한 간호사가 1004호에서 나오며 나에게 말했다.
"들어가시려면 손 소독제 먼저 바르시고 보호복 착용 다 하시고 들어가세요."
때는 2022년이었지만, 프랑스의 병원에서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호복 착용을 하기 전에 복도에서 병자성사를 할 때 착용하는 전례복을 간단히 입었다. 그 위에 보호복을 입으니 여간 불편했지만, 성사를 집전하는 상황에서는 불편함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수녀님!"
나는 반갑게 수녀님께 인사드렸다. 병자성사를 받으실 분은 마을의 작은 수녀원에서 50년 이상 수도생활을 하신 원로 수녀님이셨다. 본가를 떠나 50년 넘게 수도생활을 하시면서 이미 가족분들은 돌아가셨고 혼자 남아계셨다. 나는 이 수녀님이 계셨던 수녀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미사도 드리고 기도 모임도 함께한 적이 있어서 이 수녀님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 내가 반갑게 인사를 드렸을 때, 수녀님은 말씀을 하시기 어려운 상태셨다. 눈빛만 나를 바라보고 계셨고, 나는 그 눈빛 만으로도 수녀님의 반가운 인사를 읽을 수 있었다. 병원 측으로부터 들은 수녀님의 상태는 '오늘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병자성사 예식서를 펴고 작은 테이블 위에 십자가를 놓고 촛불을 켰다.
"수녀님, 지금부터 우리 함께 하느님께 기도드려요."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사를 시작했다. 죄의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드리고, 성경 말씀을 읽고, 성유(聖油, 축성된 기름)를 수녀님의 두 손과 이마에 발랐다. 수녀님은 침묵 속에서 나와 허공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이어서 주님의 기도를 외우는데, 수녀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함께 주님의 기도를 외웠다. 힘겨운 숨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마치 마지막 힘을 쥐어짜는 듯한 모습과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하느님을 찾는 진짜 수도자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성체는 한 조각 전체를 드릴 수가 없어, 아주 작은 조각을 떼어 입 안에 조심스레 넣어드렸다.
성모송을 노래로 부르며, 모든 예식이 끝났다. 나는 촛불을 끄고 십자가와 예식서를 정리하며 떠날 준비를 하며 수녀님께 말씀드렸다.
"수녀님, 제가 계속 기도드릴게요. 하느님과 동료 수녀님들과 저희 신부님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러자 놀랍게도 수녀님이 말하셨다.
"감 사 합 니 다." (M e r c i)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주님의 기도 때보다 더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수녀님의 감사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용서해 주시고 병자성사를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였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수녀님은 다음날 아침,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나의 첫 병자성사는 병의 나음보다 한 영혼이 하느님 곁으로 잘 가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이 글을 빌어 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드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