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와 대화
2022년 겨울의 프랑스 시골 마을.
수도원의 동료 신부님들과 함께 사목하던 프랑스 시골 본당의 신자 분들을 초대할 기회가 생겼다.
본당 구역 내 가톨릭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초대하고, 성당에서 함께 교리교육을 진행하는 형제 자매님들도 함께 초대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한식으로 준비할 생각은 없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 몇 년간 함께 본당을 이끌어와 주심에 감사한 마음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화이팅의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한식을 대접하고 싶어졌다. 여쭈어보니. 다행히 프랑스 신자분들은 한식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며 흔쾌히 승낙했다. 식사 시간은 평일 저녁 7시경으로 잡았다.
평일에는 오후 6시 까지 근무하시는 가톨릭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 연락을 주셨다. 아무 문제 없다고 답장을 드리고, 나는 식전주를 마시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무려 한 달 전에 잡은 일정이라서 큰 걱정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 약속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어느덧 한식 파티 하루 전날, 장보러 마트에 갔다. 미리 생각해둔 메뉴는 바로 만둣국과 소불고기쌈이었다. 추운 겨울 날씨를 맞아 몸을 데우기 딱 좋은 메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년 전에 프랑스 낭트의 신학교에서 한식 파티를 했던 때를 경험삼아, 빠르게 장을 보았다. 사제관에 돌아와 갖은 양념으로 소불고기를 재워두고, 손님 맞이를 위한 대청소를 시작했다. 손님을 맞이한다는 건 무난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뿌려지는 맛난 소금같은 것이 아닐까? 덕분에 오래도록 묵혀둔 문틈의 먼지와 찬장 위의 먼지들도 걷어낼 수 있었다. 기회다 싶어 주방의 인테리어도 새롭게 바꿨다. 동료 신부님들과 함께 테이블 위치도 바꿔보고, 카펫의 방향도 바꾸며 분위기를 새롭게 했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셋팅이 완료되자, 본격적으로 테이블 셋팅을 했다. 식탁보를 깔고 와인잔과 접시, 물잔, 술잔과 식기류를 가지런히 놓았다. 식전주를 마실 작은 테이블은 메인 테이블 옆 구석, 소파들 사이에 두었다. 이렇게 전날의 테이블 셋팅을 마무리했다.
식사 초대 당일,
여느 때와 같이 아침기도와 미사를 봉헌하고 본당 업무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공동체의 모든 신부님들이 각자 흩어져서 여러 본당의 업무를 보고, 저녁에 다시 모이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온 분이 손님맞이 준비를 시작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 날에는 내가 가장 먼저 사제관에 도착했다. 바로 주방으로 가서 준비를 시작했다. 식사중에 요리를 하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메뉴 준비를 끝내놓아야 했다. 냉장고에 소중히 모셔둔 소불고기를 꺼내 볶았다. 달콤 짭잘한 양념의 향기는 사제관 곳곳으로 퍼졌다. 이어서 만둣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을 끓이는 동안, 식전주로 마실 샴페인과 각종 술들을 과자와 함께 셋팅했다. 동료 신부님들이 하나 둘 씩 들어오셨고, 함께 준비를 이어나갔다.
7시가 되자, 손님들이 오셨다.
빈손으로 오기 불편하셨는지 와인과 쿠키도 사오셨다. 사제관 구경을 한뒤, 식전주를 나눠 받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 해 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또 다가올 한 해에도 수고하시라는 인사도 나누었다. 서로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각자 개인적인 삶을 삶과 동시에 본당 일 까지 하시느라 너무 고생이 많으셨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역시 성당은 신자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신자분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고 다시한번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수많은 신자분들의 노력으로 성당이라는 공동체가 단단하게 지탱이 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신자 수가 현저히 줄고 있지만, 아직까지 열심한 신자분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국교회와 프랑스 교회의 미래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대화는 식전주를 마치고 이어진 전식과 본식, 후식 시간에서도 계속되었다.
대화 중간 중간에 만둣국이 따뜻해서 좋고, 소불고기가 상추와 밥과 겉절이와 함께 먹으니 맛있다는 평가도 들었다. 성당에서 평신도로서 일을 한다는 것의 어려움, 불편함, 그에 맞게 필요한 용기 등, 사목자로서 알고 있어야 할 많은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의 시간이었다. 게다가 밥도 맛있었다. 모두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동료 신부님들과 설거지 하며 말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라고. 당시 나는 사제서품을 받은 지 5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본당일을 배워가며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가는 시기였기에, 스스로의 열정에 파묻히지 말고, 주변의 목소리를 들으며 침착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때였다. 그래서 더 신자분들의 솔직한 마음의 소리가 더 중요하게 들려왔다. 후식은 딸기타르트였다. 한식은 아니었지만, 프랑스 사람들에게 마지막은 본인의 입맛에 맞게 해드리려고 프랑스식으로 후식을 준비했다. 이 딸기타르트는 강렬하게 달았다. 이 강렬함이 나의 모든 스트레스를 녹여주는 것 같았다. 달콤함을 느끼며 생각했다. 나의 삶에도 이렇게 강렬한 달콤함이 있었나? 그렇다. 내가 사제서품을 받았을 때, 감사한 마음이 넘쳤고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했다. 이 달콤함을 마음에 품고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달콤함이 나의 힘이고 에너지다. 내가 서있는 모든 곳, 이 힘으로부터 설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서품의 달콤함은 나에게 큰 힘이다. 나와 하느님이 맺은 소중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식사에 대해서 어렸을 때는 '맛'이 가장 중요했었는데, 지금은 먹는 분위기와 식사의 방향성, 그리고 대화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길 바란다.
이 글을 빌어 나와 함께 했던 동료 신부님들과 본당 신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