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9)] 칭찬받은 레포트
대학교 철학 수업
'딩동~'
오랜만에 들어보는 신학교의 종소리.
수련소에서의 1년간 수련을 마치고 신학교에 복학했다. 새로운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조금은 어색했지만 금방 서로 마음을 열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전공이 신학이다 보니, 신학과 연계된 철학 과목을 여러 개 수강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고대철학 과목이었다. 서양철학의 기초이자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걸출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담당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삶에 대한 조언이나 살면서 맛보게 될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지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에 접목시켜 설명해 주셔서 나의 최애 과목이 되었다. 꼭 수업 진도에 맞는 철학자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솔직하게 생각을 나누는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말은 "인간의 잠재력은 수많은 수소폭탄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그 힘을 허투루 쓰지 말고, 스스로 나약하다 여기지 말고, 혹여나 우울감이나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힘을 믿어라"는 말이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힘을 믿으라'는 말은 오늘까지도 나에게 하루를 살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이는 오만한 마음도 아니고, 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도 아니고, 내가 그려본 대로 삶을 살면서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한계를 맛보기도 하고.. 자그마한 희망을 보고.. 다시 또 걸어가는 인생의 순환을 받아들이게 해주는 말이다.
1학기 말에 제출해야 했던 철학 레포트에 이러한 나의 생각을 덧붙였다. 그러자 교수님은 다음 수업시간에 철학은 철학자의 내용만 이해하고 정리하는 과목이 아니라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관점과 느낀 점을 함께 나누는 과목이라고 하시며, 나의 레포트를 칭찬해 주셨다. 나는 예상치 못한 일이라 멋쩍게 웃어넘겼지만, 진심으로 기뻤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 느낌이 점수의 잣대로 판단되지 않고, 정성스레 읽혔다는 것이 기뻤다.
사제가 되는 기쁨을 겪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내 삶이 전개되면서, 스스로 다시 걸어갈 힘을 길러야 했다. 철학 교수님의 '인간의 잠재력은 강하다'는 말씀은 나를 넘어지지 않고 다시 걷도록 꽉 붙잡아 주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칭찬을 받았던 리포트를 회상하며 당시 철학교수님께 이 글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