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10)] 운전면허에 도전하다
사랑니와 함께한 면허시험
2012년 10월.
나의 군대 말년휴가는 4주였다.
나는 이 말년휴가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휴가를 나오자마자 집 근처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을 했다. 2012년 당시에는 운전면허시험체계가 지금과 비교해서 간소했을 때였기 때문에 한 달이면 면허 취득이 가능했다. 휴가를 나와 3일 정도는 부모님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4일 차부터 면허 필기시험 준비를 했다. 사실 필기시험은 군대에서 한 달 전부터 밤마다 연등신청을 해서 기출문제를 많이 풀어놓은 상태였다. 휴가를 나오고 불과 일주일 만에 치른 필기시험은 그 덕분에 100점 만점을 받았다. 주변의 친구들은 학교 다닐 때 중요한 과목들은 100점 맞은 적 없으면서, 면허 필기시험 같이 만점이 필요 없는 건 100점 받는다고 비꼬면서 놀려댔다. 그들의 비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운전면허학원 2주 차가 되어 기능시험 준비를 했다. 처음으로 봉고차에 타보고 수동 기어변속도 해보고 핸들도 돌려봤다. 맨날 아버지 차 뒷칸에 타기만 하다가 운전석에 앉으니, 괜스레 긴장되었다. 기어변속이 얼마나 어렵던지... 1단으로 놓고 출발하지를 못하고 계속 말만 탔다.
"크르릉.. 텅... 크르릉.. 텅..."
이마에 땀이 차고 옆에 앉은 감독관에 눈치가 보였다.
"아... 시험 때 이렇게 하시면 떨어지세요.. 긴장 좀 푸시고 침착하게 천천히..."
감독관의 말을 듣고 나는 침착하게 기어변속을 시도했지만 쉬진 않았다. 커브나 주차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초 중의 기초인 '출발'이 문제였다. 그렇게 2주 차 마지막날에 기능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시험날에는 기어변속을 잘했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거머쥔 성공이었다.
기능시험 합격 다음날, 이제 3주 차가 되었고 운전학원에 가는 길. 갑자기 예상 못한 일이 생겼다. 갑자기 어금니 안쪽이 너무 아픈 것이다. 다행히 계속 아프진 않고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를 반복했다. 너무 불편해서 저녁에 치과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내 어금니 뿌리 밑에 더 큰 어금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치과선생님께 물었다.
"무슨 일인 거죠?"
"사랑니가 났네요.. 근데 꼭 뽑아야 하는 형태로 났어요. 사랑니가 가로로 누워있어서 안 뽑고 그냥 두시면 다른 치아들을 누르고 충치도 유발할 거예요."
나는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꼭 뽑아야 한다'라고 하니 다음에 올 날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치과 안내 데스크에서 치과 예약가능한 날짜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제일 가까운 날이 그다음 주 목요일이었다. 토요일이 부대 복귀날이었기 때문에 목요일에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서까지 이 아픔을 안고 있기 싫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요일 다음날인 금요일이 운전면허 도로주행 시험날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주 목요일로 치과 예약을 하고, 치통과 함께 일주일간 운전학원을 다녔다. 목요일 저녁이 되어 인생 첫 사랑니를 뽑았다. 누워있는 형태의 사랑니라서 잇몸을 절개하고 치아를 부수고 다시 꿰매는 수술을 했다. 의사 말로는 2시간 정도 뒤면 마취가 풀리면서 서서히 아플 거라 했는데 아니었다. 1시간 만에 아픔이 찾아왔고, 그날 밤은 결국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퀭한 눈과 아직 부어있는 얼굴로 면허시험장에 갔다. 내 얼굴을 보며 당황해하던 감독관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니.. 시험전날에 좀 편히 쉬시지... 안 그래도 긴장되실 텐데.."
"아 네.. 사실 제가 어제 사랑니를 뽑아서요..."
도로주행 시험을 시작할 당시에도 어금니가 얼얼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가장 쉬운 코스를 뽑았고, 큰 문제없이 도로주행을 마쳤다. 마지막 감독관의 한 마디.
"수고하셨습니다. 81점, 합격입니다. 학원 안내데스크에서 면허증 받아 가세요".
나는 정말 기뻤다. 사랑니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지만 무난하게 잘 마무리되었다. 그다음 날 후련한 마음으로 휴가 복귀도 잘하였다.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운전면허시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