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나보타스
필리핀에 온 지 3개월이 되던 때, 영어 어학원 연수를 마치고 남은 두 달간은 가난한 마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쓰레기 마을'이라고 불리는 마닐라 서쪽 해안가에 있는 '나보타스(Navotas)'라는 마을이었다. 마닐라 중부지역에 거주하던 나는 파견되는 날 저녁 무렵에 택시를 타고 나보타스에 들어갔다. 저녁이라 어둡고 오후에 비까지 내린 터라, 판자로 된 집들의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웠다. 그리고 항구를 끼고 있는 마을이라 그런지 생선 삭는 냄새도 함께 어우러졌다.
택시에서 내려 나보타스 마을에 있는 한 어린이집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몇 초 뒤, 인상 좋으신 두 수녀님이 나오셨다. 나는 나보타스 어린이집에 있는 두 한국 수녀님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었다. 물론 두 수녀님은 단기 봉사활동이 아니라 정식으로 나보타스에 파견되셔서 어린이집과 가난한 분들을 위해 일하고 계셨다. 나의 미션은 수녀님과 함께 이곳 마을 사람들을 도와드리는 일이었다.
'가난한 사람들'
가난하다는 말은 '단순히 돈이 없다'는 말일까..?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그분들의 입장에서 나의 행동은 단순히 '생색내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가난'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수녀님은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상세히 알려주셨다. 내가 받은 미션은 두 가지였다.
첫째, 새벽에 장보기, 오전에 식사준비 도움, 점심때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아이들에게 식사 배식.
둘째, 오후에 바닷가 마을에 있는 집에 방문해서 집 보수나 청소 등 도와드리기.
나의 봉사활동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걸 생각하며 장을 보고, 식사 준비도 돕고, 배식하면서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기쁜 마음이었다. 하루는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배식중에 한 낯선 남자가 들어와서 밥 달라고 소리 지르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나 혼자 남자 어른이라서 안 되는 영어로 그만해 달라고 외치고 밖으로 보냈는데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분이 조금만 덜 언성이 높고 덜 폭력적이었다면 식사라도 드릴 텐데, 나도 너무 놀라서 그냥 아이들 다치지 않게 그분을 내 보내는 것만 생각했다. 이런 일도 있었지만, 오전의 학교 배식일과는 늘 즐거웠다.
오후에 바닷가 근처 집들을 방문하면서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집안 곳곳에도 생선 삭는 냄새가 깊이 배어 있었고, 바닥은 축축했으며 벌레들도 보였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들 정도였다. 나는 부서진 지붕을 고치거나 큰 쓰레기들을 치워주는 일을 주로 했다. 중간에는 가끔씩 아이들이 말을 걸어오면 이해가 잘 되지 않아도 주로 웃으면서 대화했다. 이 마을에도 아이들은 많았다. 갓난아기들도 보았다. 이 혹독한 환경에 자칫 병에라도 걸릴까 무서웠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웃는 아이들이 많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도 첫날에는 내 건강에 대해 걱정이 있었다. '이곳에서 지내다가 내가 어떤 병에 걸리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행동이 조금 소극적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행동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소임을 하시는 수녀님들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두 달간의 봉사활동 이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가만히 있기보다는 활동을 통해 무언가를 하는 게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도 스스로가 가난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기쁨이 결핍된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필리핀 아이들의 미소를 기억한다. 그 미소는 금전적인 가난을 뚫고 뻗어나가는 빛과 같은 소중한 힘이었다. 나도 이 힘을 간직하여 어떤 삶의 상황에도 기쁨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두 달간 함께 했던 수녀님들과 형제들, 필리핀의 사람들을 회상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