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은 4박 5일 동안 한국에 머무시면서 2014년 4월에 있었던 안타까운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 가족분들을 위로하시고, 한국의 평신도, 신학생, 부제님들, 신부님들, 주교님들 그리고 수도자들을 만나 좋은 말씀들을 나누어 주셨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으로 선출되신 지 약 1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직 '새 교황'님이셨고, 선출되신 직후부터 행동으로 겸손과 사랑을 보여주셔서 많은 가톨릭 신자분들의 열렬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계셨다. 물론 2024년인 지금까지도 가톨릭 교회의 든든한 어른이시지만, 10년 전이었던 당시에는 정말 파격적인 이미지셨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겸손'의 아이콘이자 내 삶의 모델로 삼고 싶은 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교황님을 직접 두 눈으로 뵈러 간다는 건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수도자들과의 만남 (2014년 8월 충북 음성 꽃동네)
'교황님 사랑해요 -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수도자들과의 만남'
실내 강당의 무대 위에 큰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조금 늦으신다는 사회자분의 멘트가 있었다. 약 15분이 지난 뒤에 곧 교황님이 입장하신다는 방송이 나왔다. 잠시 뒤, 환호성과 함께 교황님이 등장하셨다. 나는 무대와는 거리가 있는 구석 쪽에 있었기 때문에 교황님을 가까이 뵐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님의 흰 옷이 어렴풋이 보이자,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원래 첫 번째 일정은 교황님과 함께 저녁기도를 바치는 것이었는데, 교황님께서는 본인이 늦으셨다며 각자 마음속으로 기도하라고 하셨다. 사람 사는데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일들도 하느님께서는 다 이해할 거라고 하셨다. 나는 이러한 교황님의 언행이 마음에 들었다. 교회가 요구하는 법이나 행동양식들도 사람의 역사적 배경이나 특별하고 복잡한 상황 안에서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시선이야말로, 오늘날 모든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올바른 사랑의 방법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겸손해지고 항상 모든 이에게 마음을 열라는 교황님의 메시지를 듣고, 축복을 받은 후 만남 시간은 마무리되었다. 수련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다시 생각의 문을 열었다.
'하루하루, 매 순간 작은 마찰과 오해에도 마음이 불편해지고... 때로는 열심히 살려는 내가 가식적이고 형식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어떻게 겸손한 마음을 늘 안고,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찾은 해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도 안에서 용기를 청하며 내 삶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 본 삶의 계명은 이렇다.
1. 가장 먼저 지금의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일상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본다.
2. 내가 좋아하는 일상의 순간과 무덤덤한 순간, 좋아하지 않지만 하고 있는 순간, 너무 하기 싫은 순간을 구분하고 체크한다.
3. 좋아하는 일상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좋아하지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용기와 지혜를 청하는 기도를 바친다.
4. 혹시 사람 때문에 힘들다면, 그 사람에 대해 장점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5. 기분이 나쁘거나 불편한 점이 있다면, 솔직하게 그 점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한다.
6.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고정관념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7. 다른 사람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되, 상황과 상식에 맞는 선에서 도와준다.
8. 나는 선의로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
9. 칭찬을 들을 때 감사히 받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조언으로 여기며 지낸다.
10. 감정을 거짓 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진짜 나'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만났던 기억도 좋고, 만남 이후에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해 보는 시간도 좋았다. 2014년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썼다. 살아가면서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과 '사랑'은 언제나 소중한 덕목이 아닐까? 나는 매일 사람들과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겸손과 사랑을 배우고 있다. 내 일상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