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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사 Oct 30. 2024

[20대 시절(6)] 6일간 400km를 걷다(2)

설날에 걷다

[도보 3일 차]


"형, 잠깐 쉬었다 가요".


나는 우리 세 명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 특히 제일 뒤에서 걷고 있는 형은 첫날밤부터 무릎이 아팠고, 나와 가까이 앞장서 걷고 있는 형도 한 시간 전부터 하품을 여러 번 하는 걸 보았다. 나도 물론 피곤했다. 3일 동안, 사과 여섯 개와 라면 한 번 끓여 먹은 게 식사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1월 말이어서 날씨가 여간 추운 게 아니었다. 첫날밤에 갑자기 휘몰아친 소나기를 흠뻑 맞고 감기에 안 걸린 것만 해도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었다. 우리는 저 앞에 보이는 작은 버스정류장에서 쉬고 가기로 했다. 정류장에 들어와 보니 나름 괜찮았다. 작고 허름했지만, 플라스틱 벽으로 찬 바람을 잘 막아주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단잠을 자고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쉬는 시간 동안 나는 우리가 걸어온 여정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목포 성 미카엘 성당에서 출발하여 나주, 광주외곽을 지나 고창에 도착한 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먹는 것, 따뜻하게 입을 것, 나쁜 날씨에 잘 대응하는 것 등 모두가 어려움이었다. 다행히도 마을분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해결할 수 있었다. 조금 더 빨리 걸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오히려 몸이 더 상하는 경험도 했다. 욕심도 적당히 내라는 하늘의 경고 같았다. 나와 두 명의 형제들은 수도생활을 하기 위해 영적인 훈련의 목적으로 이 도보 순례를 하게 된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버려야 할 나의 욕심도 보고, 용기가 필요함을 느끼고, 의외로 우리 주변에 따뜻한 마음씨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음에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되었다. 


'부우웅~'


정류장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플라스틱 벽이 바람막이가 되어주었지만, 정류장 내 온도는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한 시간이 좀 지났을까? 가장 큰 형이 말했다.


"자 이제 다시 걸어보자".


우리는 어둠 속에서 추위와 함께 다시 걷기 시작했다. 



[도보 4일 차]


"드디어 정읍이다!"


새벽동안 우리는 정읍시에 도착했고, 거의 쓰러질 것 같은 컨디션이었다. 마침 한적한 시골 겨울길 새벽안개 사이로 작은 불빛이 보였다. 시골길에 보기 드문 불빛이어서 일단 가까이 가 보았다. 빛나는 건물은 작은 마을의 한 교회였고, 그 앞에 정자가 있어 쉬고 가기로 했다.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새벽 7시경이었다. 우리 세 명은 정자 위에서 신발도 제대로 못 벗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 


"저기요..."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건 것이다. 


"네...?"

"도보하시는 건가 봐요.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혹시 예배드리러 오신 건가요?"

"아니요. 저흰 잠깐 쉬려고 정자에 들린 것뿐이에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희가 신발도 제대로 안 벗고..."


슬쩍 옆은 보니 형들도 내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 아주머니와 대화하면서 주변을 보니, 교회의 새벽 예배가 끝나, 사람들이 교회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주머니도 새벽 예배를 마치고 나오신 듯 보였다. 


"걸으신 지 꽤 되신 거 같은데.. 그래도 떡국은 드셔야죠. 저희 집에서 함께하고 가세요".

"네...? 아.. 떡국이요?"

"네. 오늘 설날이잖아요."


나는 깜짝 놀랐다. 열심히 걷느라 오늘이 설날인 것도 잊고 있었다. 

순간 형들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눈빛은 떡국을 먹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느껴졌다. 물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드디어 제대로 된 한 끼를 먹는구나!' 하며, 기쁜 마음으로 아주머니를 따라갔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갑자기 차를 타라는 것이었다. 순간 우리 세 명은 고민했다. 왜냐하면, 규율 상 차량이나 버스 탑승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지쳐있었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차를 탔다. 사실 고백하자면, 차를 타고 우리가 걸을 길을 줄일 수 있게 되어 너무 좋았다. 솔직히...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웃으며 아주머니 차를 탔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주머니의 차는 우리가 걸어왔던 방향으로 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정읍에 도착했다는 팻말을 다시 반대로 지나 우리가 힘들게 걸어왔던 길을 차를 타고 다시 보았다. 우리는 우리의 이기적인 생각을 후회했다. 어이가 없어서 실웃음이 났다. 마음을 추스르고 아주머니 댁에 도착해서 집에 들어갔다. 집은 매우 따뜻했다. 온몸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아주머니는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샤워를 하라고 했다. 물도 따뜻하고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나는 성당을 다니고 아주머니는 교회를 다니지만, 종교를 떠나서 감사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샤워 후 아주머니가 내오신 떡국은 또 꿀맛이었다. 드디어 마주한 두 번째 끼니. 도보 순례 중에도 설날에 떡국을 먹게 되다니, 신기하고 기쁜 체험이었다. 따뜻한 식사를 하고 나니 에너지가 자동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아주머니께 편지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도보 5일 차와 6일 차에도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과 마을 분들의 배려와 사랑이 공존했다. 마치 평행봉처럼 아픔과 사랑은 균형을 유지하며 6일간 나를 걷게 해 주었다. 5일 차 때는 전주, 완주를 지나 익산에 들어갔고, 6일 차 때는 부여를 지나 공주시에 들어갔다. 거의 7일 차가 되어 세종시 도착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금 늦었지만, 우리 세 명의 형제들의 땀과 아픔과 노력이 스며 있는 소중한 체험의 시간이었다. 


매년 설날이 되면 도보 4일 차 때 먹었던 떡국이 생각난다. 이 글을 빌어 떡국을 맛있게 끓여주신 그 아주머니와 함께 걸었던 수도원 형제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잊을 수 없는 도보 4일 차의 떡국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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