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벗어나지 못하는 머무름

by 나잘스프레이

가장 솔직한 형태의 생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엉키고 헝클어진 하루의 시간을 방 안에 풀어놓고, 서두르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무언가를 회복하겠다는 다짐도, 달라지겠다는 약속도 없이 그저 오늘을 오늘로 남겨두는 일부터 시작한다. 각별했던 실패의 지난날들이 문득문득 고개를 들지만, 그것들을 밀어내지 않기로 한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두 손으로 붙잡듯 받아들이며 그 실패들 위에 잠시 빛을 얹어본다. 모든 것을 덮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숨을 붙일 만큼의 온기는 거기에서 온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햇살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윽고 무기력한 불안이 잔물결처럼 방 안을 침범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다시 제자리에서 균형을 잃는다. 이 불안은 커다란 파도가 아니라 계속해서 발목을 적시는 얕은 물처럼 나를 지치게 한다. 그 순간, 나는 두 개의 감정 사이에 서 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방랑자의 마음과 이미 한 곳에 머무르고 있으면서도 끝내 소속되지 못한 이방인의 감정.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과 이 방을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체념이 동시에 숨을 채운다. 방 안 가득.


방랑자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싶어 하지만 방 안의 나는 움직일 이유조차 잃어버린 채 같은 자리를 맴돈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멀리 와버린 기분. 그래서 이 공간은 안식처이면서도 낯선 땅처럼 느껴진다. 오늘 하루를 어딘가로 향하는 여정으로 만들지 않기로 한다. 대신, 머물러 있음 자체를 견뎌본다. 불안을 몰아내지 않고, 무기력을 다그치지 않은 채 이 감정들이 방 안을 오가도록 조용히 자리를 내어준다.


아마 오늘은 무언가를 이뤄내는 날이 아닐 것이다. 다만, 무너지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고 햇살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불안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날일 뿐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하루도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방랑자와 이방인의 감정이 같은 숨을 나누며, 아직 낙오자가 되지는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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