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하나 들여놓을 틈이 없다. 기웃거릴 마음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제는 익숙한 사실이 되었다.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들은 어느새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이 되었고, 잘 해낸다고 여겼던 감각들은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 물건처럼 낯설다.
오래 기다렸고, 오래 버텼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마치 파도가 지나간 자리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히 지워져 나는 내가 무엇을 지켜온 사람인지조차 잠시 잊었다.
여전히 나는 중력의 바다에 있다. 이곳은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심연이 아니라 빠져나가야만 숨을 쉴 수 있는 수면이다. 여기서 살아 있으려면 손에 쥔 것을 증명해야 하고, 살기 위해선 결국 무언인가를 바다에 던져야 한다는 사실이 익숙하면서도 버겁다. 그래서 나는 맞닥뜨리고, 견디고, 되짚고,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이 전진인지, 소모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몸은 애쓰고 있는데 방향은 계속 제자리다. 그 애씀에 둘러싸고 닿아있는 모든 것에 생채기가 날 뿐이다. 퍼져버린 붉은 쓰라림.
방 안에 머물기 위해 멈춘 시간과 방 안을 벗어나기 위해 흔들린 순간이 서로의 그림자를 지운다. 멈춤은 무력처럼 남고, 몸부림은 소음으로 남는다. 침묵의 옷을 빌려.
어느 쪽도 밖으로 데려다주지 못한다.
이러한 반복은 앞으로 나아가는 궤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삼키는 원에 가깝다. 끝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의 살을 조금씩 물어뜯고 있는 셈이다. 이 고리는 나를 죽이지도, 완전히 놓아주지도 않는다. 이 순환이 나에게 남긴 자국을 바라본다. 벗어나지 못한 흔적이 아니라, 지금까지 버텨왔다는 증거처럼.
어쩌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법을 다시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몸을 세워두는 법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