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온 음울과 허상 그리고 무너짐의 현상들은 결국 앞서 지나온 문장들의 다른 반복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부정하지 않는다. 같은 말을 다른 순서로 배치해 다시 설득하려 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 위에서 나는 나의 감정을 조금 늦게 알아차린다.
시간이라는 것은 늘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어떤 시절은 찰나에 사라지고, 어떤 시절은 멈춘 채로 그 안에 나를 가둔다. 그 차이는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놓인 감정들이 어떻게 부딪혔는가에 따라 생겨난다.
결락과 원으로 이어진 이 궤도 위에서 실수하는 삶과 실패하는 삶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삶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본다. 그것들은 순서가 아니라 겹침에 가깝다. 실수는 실패로 흘러가고, 실패는 다시 그 삶으로 되돌아오며 그 경계에서 계속 머뭇거린다. 이 반복 속에서 하나의 인식이 뒤늦게 고개를 든다. 자존감을 너무 이른 시기에 잃어버렸다는 것. 스스로를 지탱해 줄 최소한의 신뢰를 내려놓았다는 사실. 그 이후로 자존감은 존재의 가치를 기억하지 못한 채 오래 방치되어 왔다.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버텨야 할 허울로만 남아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세우는 대신 나를 줄이는 법을 먼저 배워버렸다. 그렇게 사랑받을 줄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점점 움츠러들고, 도전은 위험이 되었고, 선택은 부담이 되었으며, 나아간다는 말은 언제나 초과하는 언어로 남았다. 보이는 것과 다르게. 나는 세상을 향해 낮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음울의 형상을 빌려 예상된 실패를 안고.
이 모든 과정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는 중이다. 비난도 연민도 아닌 관조에 가까운 시선으로.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묻기보다 이렇게 되어온 시간의 결을 하나씩 짚어본다. 삶은 늘 실패와 성공의 축 위에 놓여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은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채 그냥 흘러갔고, 그 흐름을 견디며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를 유지해 왔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조금 덜 가혹해진다.
다시 일어서기보다는 무너졌던 자리의 높이를 처음으로 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 관조는 희망을 약속하지 않지만, 적어도 자기기만으로부터는 조금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결락을 안은 채 원을 오늘도 돈다. 다만 이 반복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지 않는 사실을 깨닫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