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면 어차피 계속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스스로에게조차 내밀지 못했던 손을 이제서야 아주 조심스럽게 뻗어본다. 이 행위는 결심이라기보다 반사작용에 가까운 것 같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움켜쥐지 않기 위해서.
결락의 원에서 아주 잠시 벗어난다. 완전히 빠져나온 것은 아니고, 그 원의 가장자리에 발끝을 걸친 채 숨을 들이마신다. 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불안은 여전히 삼킬 수 없는 크기로 남아 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라앉는 속도가 느려진다.
언제 다시 떨어질지 모른다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 불안을 밀어내지 않고 입안에 오래 머금는다. 씹히지 않는 감정은 삼키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그래서 나는 상실의 기술을 다시 익히기 시작한다.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기술이 아니라 잃어도 무너지지 않는 법에 가까운 것. 실패의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넘어지지 않는 요령이 아니라 넘어진 뒤 스스로를 더 낮추지 않는 연습.
돌이켜보면 많은 것들은 처음부터 상실될 의도로 채워져 있었다. 지나치게 큰 기대, 과잉된 의미, 지켜내야 한다고 믿었던 허상들. 그것들을 붙잡으며 스스로를 더 무겁게 만들었고, 이제서야 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이 내려놓음은 해방이 아니다. 다만, 쥐고 있던 손을 펴는 일에 가깝다. 텅 빈 손바닥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절망보다 아무것도 쥐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잠시 숨이 트인다.
나의 그림자를 입는다. 벗어던지지 않고, 부정하지도 않은 채 그 어두운 윤곽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림자를 입는다는 것은 음울과 동일해지는 일이 아니라 음울이 더 이상 나를 규정하지 못하게 하는 아주 느린 분리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 받아들이는 중이다.
오늘의 나는 자유를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음울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 하나만을 가슴 깊은 곳에 남겨둔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음울이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