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헤어짐을 겪는 중이다. 현실이 아니라 꿈속에서. 얼굴이 분명하지 않은 연인, 오래 사랑했던 사람과 끝을 맞이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깨고 나면 아무런 일도 없는데, 마음은 이미 무언가를 잃은 사람처럼 흩날린다.
어쩌면 나는 지금의 삶에서 무엇인가와 헤어지려는 중인지도 모른다. 사람일 수도 있고, 방식일 수도 있고, 오래 붙들어온 나 자신일 수도 있다. 그 알 수 없는 대상이 꿈의 형상으로 나타나 나를 대신해 이별을 연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감정은 설명 없이 오늘의 한가운데 내려앉는다. 아직 사라진 것이 없는데 이미 잃어버린 것처럼 상실이 자리한다. 그 상실은 요란하지 않고 오히려 고요하게 퍼져 상심이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바라보는 것들과 듣는 것들이 모두 아련하게 느껴진다. 빛은 조금 더 멀어 보이고, 소리는 약간 늦게 도착한다. 현재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장면을 뒤늦게 따라가고 있는 기분. 나는 이 감정이 누군가와의 이별인지, 어떤 시절과의 작별인지 분명히 말할 수 없다. 다만, 이별의 예감이 삶의 공기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만은 또렷하게 인지한다.
헤어짐은 항상 두 사람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이전의 나와의 결별이기도 하고, 지켜내지 못한 가능성과의 작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꿈속의 연인은 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실은 여러 이름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아직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꿈은 이미 한 발 앞서 끝을 보여준다. 그 끝 앞에서 울지도, 붙잡지도 못한 채 그저 서있다. 음울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별의 감정은 그 음울과는 다른 결을 가진다. 그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조용한 상실의 예감에 가깝다. 그리고 그 예감은 어떤 전환점 가까이에 내일이 서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암시한다.
무엇과 헤어지고 있는지 분명 알 수 없지만, 이 슬픔을 밀어내지 않기로 한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감정이 사실은 무언가가 끝나고 있다는 신호라면, 그 끝을 묵묵히 통과하는 일 또한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아련함을 안은 채 오늘을 살아간다. 슬픔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여기 서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