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더 아래로 가야 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떨어지는 방향이 어둠인지 고요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은 곳. 그곳에서는 시간이라는 감각마저 묘하게 늘어나 모든 것이 아주 늦게 혹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버리곤 한다. 아무도 없는 곳인데도 누군가가 나의 입과 눈을 막고 결박하고 있는 듯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심연의 바닥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온도로 나를 감싼다. 그 무온도의 감촉에 길을 잃은 사람이 혼자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멈춰 서다가 그 생각마저 잃어버린다. 이곳에서는 말조차도 존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소리 없는 파편으로 흩어져 버린다. 그 파편들이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흘려보내온 감정들의 잔해들을 한 조각이라도 붙잡고 싶어 손을 뻗어본다.
손끝에 닿는 것은 늘 허공이거나, 이미 사라진 오늘의 그림자뿐이다. 이내 깨닫는다. 지금도 계속 가라앉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바닥에 닿았다고 생각한 곳조차 또 다른 심연의 입구였다는 것을. 그래서 가끔, 가라앉는 이 움직임이 사실은 나를 숨기기 위한 몸짓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되찾기 위한 일종 귀환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흐릿해지는데 유독 또렷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어둠의 모양이다. 생각보다 이것은 더 단단하고,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정직하다. 그 정직함 앞에서 잠시, 아주 잠시 숨을 멈춘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고 싶어지는 마음이 동시에 밀려온다. 두 감정이 부딪히며 만든 미세한 진동이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불안을 더 증폭시키거나, 불안을 상쇄하는 것 같다.
아주 조용히 숨을 들이켠다. 어둠이 폐 깊숙이 들어와 하나의 무게로 내려앉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그 감각을 외면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 어둠조차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한 부분임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위해. 어둠이 완전히 나를 삼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찰나의 평온함에 기대기 위해 어둠을 멀리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