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잃어가는 감각

by 나잘스프레이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점점 ‘감각을 잃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구와 마주 앉아 있어도 그 얼굴의 온도가 느껴지지 않고,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도 마음의 작은 미동조차 감지되지 않는다. 마치, 몸 안의 모든 감각기관들이 하나씩 꺼져가는 듯한 느낌. 빛이 먼저 흐려지고, 소리가 뒤따라 멀어지고, 이윽고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조차 안개처럼 희미해진다.


사람들은 괜찮냐고 묻는다. 그 질문이 어떤 감정을 전제로 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감정의 결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그 어떤 위로도, 관심도, 심지어 고독도 똑같은 밀도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 어떤 변형의 움직임도 없이, 호흡도 없이.


감정의 모양이 뭉그러지고, 욕망의 방향이 흐릿해지면, 선택하던 무언의 시선조차 사라진다. 마치 큰 바닷속에서 천천히 빛을 잃어가는 달빛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이 무엇인가를 희석시키고 있다.


잃어가는 감각은 심연이 나를 집어삼킨 결과가 아니라, 오랫동안 스스로를 갈아내며 유지해 온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가 무너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점점 더 얇아지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도 희미해지고, 붙잡던 마지막 언어들마저 서서히, 아주 서서히 흐려진다.


순간, 이러한 모든 것들조차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감각 위에 덧대어진 생각을 붙잡고 있다 보면 아주 작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곳을 다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절망도 희망도 아닌 그저 흐릿한 기척에 가깝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다가도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지금은 그 흐릿한 기척이 나를 완전히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미약한, 거의 느껴지지 않는 온기일지라도 이 안에서 조용히 맴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울어가는 감정 속에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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