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는 생각보다 오래 이어진다. 잠깐의 추락이나 일시적인 붕괴가 아니라 파동처럼 반복된다. 한 번 지나간 줄 알았던 감정이 다시 돌아와 같은 자리를 두드리고, 그 리듬에 점점 익숙해진다. 익숙해진다는 사실이 가장 두려운 변화라는 것도 모른 채로.
파동의 한가운데에서 끝내 외면해 왔던 어둠과 마주한다. 슬픔이나 상처 같은 이해받기 쉬운 어둠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비겁함과 계산 그리고 살아남고 싶어 했던 이기적인 욕망의 형태들.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인정받고 싶었고,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나의 선택들은 점점 더 ‘나를 위한 것’처럼 보이도록 교묘하게 포장되었다. 그 이기심은 노골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합리적이고, 상황에 맞고, 때로는 배려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안쪽에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타인의 몫을 조금씩 밀어내는 방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선택들을 유지하기 위해 쌓아온 거짓. 크게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거짓, 스스로에게조차 들키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다듬은 감정의 거짓들. 어느 순간 나는 그것을 거짓이라 부르지 않고 ‘어쩔 수 없음’이나 ‘지금의 최선’ 같은 말로 대신해 왔다.
지금 이곳에서는 그런 말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모든 포장이 벗겨지고, 모든 동기가 드러난다. 이곳에서는. 나는 더 이상 선택의 이유를 미화할 수 없게 된다.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차라리 내가 약했다는 말이 편했고, 차라리 내가 상처받았다는 설명이 쉬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의 시선에 매달린 채, 나 자신을 중심에 두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외면했는지를 인정하는 순간, 나는 나를 변호할 언어를 문장을 완전히 잃는다.
이 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자주 뒤돌아서고, 다시 부정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문장에 몇 번이고 매달린다. 문장이 무너질 때마다 다시 한번 낙하한다. 아니, 추락한다. 어둠을 받아들이다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더 이상 변명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아주 조금이나마 늦게서야 깨닫는다.그 깨달음조차 곧바로 나를 혹은 관계를 자유롭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무겁게 더 강렬하게 짓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