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천개의 바람이 되어-임형주>
TV 속 늙은 여배우는 구슬픈 목소리로 담담하게 읊조리듯 노래를 불러나갔다. 자막을 따라 내 붉은 눈동자도 같이 움직이고. ‘윽’ 하는 작은 비명과 함께 나는 더 큰 통곡을 막으려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냥 노래만 들었을 뿐인데 마음이 찢어질 듯 많이 아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 노래가 생각날 만큼.
어디서 들어본 노래인데.
어디서 들어봤더라.
멜로디는 귀에 익숙한데.
누가 썼는지 가사 참 구슬프다.
가사를 쓴 사람은 크나큰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이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은 고스란히 남은 사람이 떠안는다. 죽은 사람은 그저 불쌍하다고만 한다.
“아들! 혹시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 알아?”
요즘 공부하느라 입을 완전히 닫은, 세상의 흐름도 모르고 그야말로 생활 바보라고 생각했던 수험생 아들에게 물었다.
“세월호.”
아들은 딱 한마디 내뱉었다.
"아...... 그래?"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소름이 돋았다.
그때 그 노래였구나.
맞네. 그때 울면서 들었던 노래였지.
그래서 마음이 아팠구나.
왜 몰랐을까?
TV를 전혀 보지 않는 아들도 기억하고 있는데.
아마도 아들이 비슷한 또래라서 더 목이 메었나 보다.
늙은 여배우는 얼마 안 남은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보고 주위에서 먼저 간 사람들도 생각하면서 무엇보다 이 노래가 슬픔을 자극하는 노래 같지만 위로하는 음악 같아서 선곡했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아들! 나중에 세월이 흘러서 엄마가 저 멀리 가면 엄마 장례식장에 이 노래 틀어주면 좋겠어. 꼭 틀어줘.”
아들은 대꾸도 없고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밥만 먹었다.
그때 아들이 침묵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지.
부모의 울타리가 전부인 미성년자 아들에게 언젠가는 우리가 네 곁을 떠나 영영 볼 수 없을 거라는 신호를 미리 내비친 것이다. 숫기 없고 쑥스러움이 많아 부모에게 자기표현을 전혀 못하는 아들이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두려움에 가슴이 철렁거렸을 듯하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나버리니까 여기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과 그동안 맺었던 많은 인연들도 나와 함께 사라지는 거야. 가족도 마찬가지고.'
'내가 없으면 모든 게 끝인데 죽으면 그만이지. 죽은 후에는 다 부질없어.'
남아서 슬퍼하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한 채 난 극히 이기적이었다.
어느 날, 노랫말이 나를 일깨웠다.
내 사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노래가 나를 대신해 읊어주기를 바랐다.
이제 그만 슬퍼하라고.
나 때문에 더 이상 울지 말라고.
앞에 놓여 있는 건 그저 사진일 뿐 난 이제 거기 없다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항상 네 곁에서 너를 지켜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