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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섬 Jun 20. 2022

외로운 사람들

우리는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

버스를 타고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언제나 쏠쏠하다. 여기저기 심심찮게 꽃들이 무성하고 길가에는 길쭉한 봄나물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챙이 긴 모자를 둘러쓰고 별꽃이 흩어진 꽃무늬 남방을 입은 할머니 한 분이 풀들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캐고 있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할머니가 입고 있는 남방의 꽃무늬는 햇살에 유난히 빛났다. 꽃무늬 남방을 즐겨 입던 그 할머니는 지금도 잘살고 계실까.




8년 전, 누구나 세월 속에 한 번은 스쳐 갈 일이지만 젊은 나이인 나로서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 일어났다. 전날까지 멀쩡했었는데 옆으로 돌아눕는 것조차 힘들 만큼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계속 천장만 바라보고 똑바로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질병인 허리에 탈이 난 것이었다.


그때는 우리가 주말부부를 했던 시점이라 참 다행이었다. 남편이 출장을 나온 날 기다렸다는 듯이 그 사달이 났으니까. 남편은 일을 미루고 나를 부축해 근처 한방병원을 찾았다. 수술을 고려해 미리 겁부터 먹은 내가 누워서 한 시간을 검색한 곳이 한방병원이었다. 의사는 내 상태와 검사를 토대로 결국 입원하라는 오더를 내렸다.   


규칙적인 한방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빈 병상은 어느새 사람들로 채워졌고, 대부분 보호자 없이 혼자 지냈다.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과의 시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병원을 나서면 내 인생에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이라 더 편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을 벗어나서 혼자 있는 시간 또한 새로웠다. 꼭 휴가를 나온 기분이랄까,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다. 남들은 맛이 없다고 했지만, 병원에서 꼬박꼬박 나오는 밥이 너무 맛있었다. 남이 해주는 음식은 뭐든 다 맛있는 법이니까. 다들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지만 난 오랜만의 휴가가 싫지는 않아 내심 조금 더 즐기고 싶었던 것 같다.


안쪽 끝 침대의 주인은 85세 할머니였다. 어깨가 아파 이곳에 오게 된 할머니는 우리 방에서 가장 꼿꼿한 허리를 가지고 계셨다. 나비가 춤을 추듯 살랑살랑한 걸음걸이는 무척 가벼워서 뒷모습만 보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할머니는 항상 밝은 표정과 편안한 농담으로 방 식구들이 잠시나마 병상의 현실을 벗어나 호탕하게 웃을 수 있도록 일조하셨다.  


그러나 할머니는 밤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하루의 문을 닫으려 불을 끄고 모두 자리에 누우면 그때부터 할머니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머리맡의 개인 등을 켰다가 끄기를 반복하는 것은 기본이고, 무엇을 꺼내는지 옷장 문을 열었다 닫기를 계속했다. 옷장 안 비닐봉지의 부스럭거림도 사람들의 숙면을 방해하는데 한몫 거들었다. 그러다 잠이 안 오는지 병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복도를 터벅터벅 거닐다 다시 들어왔다. 이 같은 행동은 매일 밤, 밤이 지나는 동안 이어졌다.


잠을 설친 방 식구들은 대낮의 친분 때문에 차마 말은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다. 들은 얘기지만 내가 들어오기 전에 벌써 두 명의 환자가 할머니와 싸우고 병실을 옮겼다고 한다. 입원한 다음 날 아침, 내 주치의는 나를 보고 다짜고짜 “병실 옮겨줄까요?”라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 나는 뜬금없다 생각했고 쿨하게 괜찮다고 답하였다. 그때 의사는 웃으며 말했었다. 착하다고.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잠을 못 자니 점점 예민해졌다. 할머니가 잠시 방을 비우기라도 하면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방 식구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입원한 지 얼마 안 된 아가씨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방을 바꿔야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나는 갈등이 생겼지만, 이왕 참은 거 더 참자는 심정으로 그냥 무시했다. 또 할머니와 주치의가 같아서 침을 맞거나 물리치료를 받으러 갈 때 다정히 손을 잡고 다니는 바람에 차마 양심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남들이 깨어있는 낮에 주로 쪽잠을 주무셨다. 누가 보기라도 하듯 잠을 잘 때는 커튼으로 침상을 빙 둘러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게 했다. 할머니는 그 잠깐의 숙면으로 하루를 버티는 듯했다. 코를 심하게 골 때도 있고, 짧은 시간에 무슨 꿈을 꾸는지 가끔은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루의 낮과 밤이 바뀐 채 다른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생활을 하는 할머니의 심보는 꼭 청개구리 같았다.


틈만 나면 브러시로 빗질해대는 할머니의 짧은 파마머리는 매우 정갈했다. 키가 큰 할머니가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단추를 반듯하게 채운 화려한 꽃무늬 남방을 입어 더 젊어 보였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기분이 좋은지 할머니는 항상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날 입은 속옷과 양말을 화장실로 가져가 손빨래를 한 후 바지런하게 머리맡에 걸어두었다. 연세에 비하면 참 깔끔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저녁마다 할머니 자식들의 병문안으로 병실은 북적거렸다. 딸들에 아들, 사위 거기에 장성한 손주들까지. 할머니는 하루 대부분을 자식들 자랑으로 소일했다. 자식들은 모두 자수성가했고, 말만 들으면 효자가 따로 없었다. 증명이라도 하듯 자식들은 병실에 오면 어머니 잘 부탁한다고 다른 환자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누가 봐도 유복한 집안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는 영감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막내가 세 살 되던 해, 밭일하다 들어온 할아버지가 낮잠을 잔다고 누웠는데 갑자기 코를 심하게 골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어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인기척이 없어 방에 들어갔더니 할아버지는 그 길로 돌아가셨다고.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 당시 미리 혈압이라도 쟀으면 그리 허망하게 가지는 않았을 텐데 고혈압이 있는 것을 몰라 참 쉽게 보냈다며 어리석었다는 책망을 되풀이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한테 너무나 자상한 남편이었고 할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해주셨다고. 할머니는 그때 시절을 그리워하며 했던 얘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하고 또 했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 흥겹게 춤을 추셨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춤을 배우러 다녔다면서 짝없이 허공과 손을 맞잡으며 빙빙 돌면서 춤사위를 펼쳤다. 그러면 슬프게도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다시 웃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떠난 지 4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할머니의 뇌리에는 어제의 일인 듯 보였다. 그때야 매일 밤 할머니가 했던 행동의 물음표에 대한 답을 알 것 같았다. 며칠 잠을 설친 탓에 몸이 예민해져 짜증이 나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결코 할머니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냥 할머니가 애처로웠다. 어쩌면 짧은 할아버지와의 결혼 생활이 홀로 지샌 할머니의 40년 삶을 지탱해 줬는지도 모른다. 그 사랑의 추억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 줄줄이 남겨진 어린 자식들의 어미 자격으로 세상과 맞붙어 이겼는지도.


애틋했던 남편의 정이 그리운 할머니는 갈망을 억누르려 춤을 배우고 자식들을 건사하며 열심히 사셨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적막한 밤이 되면 혼자 남겨진 외로움이 극도에 달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표현된 것 같다. 안 그런 척, 강한 척했던 겉모습과는 달리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었던 정신은 매일 밤 할아버지라는 울타리를 찾아 헤매고 다니셨나 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부재가 낳은 쓸쓸함과 삶의 무게를 등에 업고 하루하루 과거의 기억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외로움을 싣고 매일 밤 자신도 모르는 흔적들을 남기며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할머니를 보면서 먼 훗날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과 스트레스는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해주던 배우자의 부재가 아닐까.  


할머니가 퇴원하시던 날, 이른 아침부터 자식들이 모였다. 집으로 간다고 좋아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덜컥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다시는 할머니를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웃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 뒤로 자식들은 감히 상상하지 못하고 절대 알 리 없는 할머니의 그리움이 보여서 감정이 더 격해졌나 보다. 할머니는 매일 밤 또 어디를 헤매고 다니 실지 걱정도 되고 마음이 아려 왔다. 그래도 시야에서 멀어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활기차 보여 한 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기도 했었다.


이 계절처럼 할머니의 마음에도 새로운 봄이 찾아왔는지 궁금하다. 연세는 꽤 되셨겠지만 외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시기를 내심 기대해본다.





저마다 시기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 아닐까?

처음부터 혼자라 외롭고.
누군가와의 추억이 생각나 더욱 외롭고.
수많은 얘기를 나누다 헤어지면 공허감에 사무치게 외롭고.
나를 찾아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설레다 결국 희망 고문만 당하면 비참해 외롭고.

내가 외로운지도 모르고 또 외로우면 안 되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가서 외롭고.

무엇보다 늘 함께 하던 사람이 곁에 없어서 죽을 만큼 외롭고.





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
어쩌다 어렵게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서 우린 사랑을 하네.


<외로운 사람들 - 이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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