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인 픽션의 사회문제 반영

망가타임 키라라 작품들로 보는 무의식적인 투영

by Lingua Obscura

일상물은 중대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평화롭고 즐거운 분위기가 지속되는 장르다. 친구들이 수다를 떨고, 학교생활을 즐기며, 소소한 일상을 보낸다. 설령 갈등이 있다 해도 가볍고 금방 해결된다. 왜냐하면 일상물은 말 그대로 ‘철학 없음’조차 하나의 주제 의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치유’일까? 아니면, 청춘을 팔아넘기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포장일까?

팍팍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이런 장르의 작품조차도 자세히 보면 모두가 지나치는 사회 구조의 반영, 정치적인 것들이 드러난다. 이번 글에서는 일상물의 대표 출판사, 망가타임 키라라의 작품들로 이를 알아보려 한다.


이론적 배경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 「작가의 죽음」

“작가의 의도는 더 이상 독해의 중심이 아니다. 의미는 독자와 텍스트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핵심 개념은, 작가가 어떤 의도로 글을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는 선언이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 아비투스와 계급 재생산


“개인은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취향과 행동은 구조적으로 결정된다.”


아비투스(Habitus): 사회 구조가 내면화되어 형성된 감각, 성향, 취향

계급 재생산: 상류층은 자녀에게 자기 계급에 맞는 문화자본과 태도를 물려주며 계급을 유지함이 핵심 개념이다.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 이데올로기와 국가기구


“이데올로기는 개인에게 세계를 자명하게 보이게 만든다.”


핵심 개념: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

학교, 미디어, 문화산업 등이 특정한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주입함

개인은 그것을 자신의 자유로운 생각이라 믿지만,

사실은 구조의 재생산 장치에 불과


사례1: 주문은 토끼입니까?


주문은 토끼입니까는 미소녀들이 카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행복하고 간단한 일상을 그린 전형적인 일상물이다. 소녀들은 언제나 행복하고, 자유로우며, 소소하다. 언뜻 보면 어두운 곳 하나 없는 일상물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작가도 의식하지 못한 어두운 점이 있다.

주문은 토끼입니까에 나오는 주연들은 전부 상류층이다. 그리고 가난한 집안과 사회에는 전혀 포커싱이 되지 않고, 주연 5인방을 중심으로 한 상류층만의 놀이에 집중이 된다. 등장인물중에 그나마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샤로조차도 엘리트 집안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이 작품은 상류층들만의 폐쇄된 공간이며, 가난하고 사회적 약자인 이들은 아예 구조적으로 소외된 작품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이것뿐만 아니라, 리제가 군인집안 출신이라는 설정은 그 작품 내에서도 ‘전쟁‘이라는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리제는 규율과 질서에 길들어졌으며, 무기 다루기에 익숙하다. 이것은 전쟁이란게 없으면 전혀 필요없는 요소들이다. 그리고, 모두 상류층인 주역들이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그 배경이 되는 국가가 그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등장인물들의 무해함이 사회 구조를 가리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사례2: 봇치 더 락


이쪽은 그래도 망가타임 키라라치고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고토 히토리는 단순한 내성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현대 일본 청년들의 고립 문제를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SNS 속 자아와 현실 자아의 괴리,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실제로는 무대에 서지 못하는 현실은, 실존적 분열의 전형이다.


작가는 이 문제를 사회구조보다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결국 ‘용기를 내면 해결된다’는 결론은 네오리버럴 담론의 반복이다. 이는 사회가 아닌 개인을 문제의 중심으로 돌리는 자기책임 이데올로기의 전형이다.


이게 무의식적 구조라는 증거: 작가는 히토리를 “개성적인 캐릭터”로 썼지만, 그 고립의 배경이나 구조적 원인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즉, 개인의 문제로 환원됨 -> 용기 내면 해결됨

이건 네오리버럴 담론의 핵심이자 문제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에게 있다는 자기책임 이데올로기다.


음악과 청춘의 상품화

작품 속 음악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며, 결국 ‘이렇게 사는 게 청춘이다’라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실제 청년들이 겪는 단절, 실패, 무연의 경험을 은폐한 채, 성장서사로 포장된 이상화된 청춘 상품을 팔고 있는 셈이다.


인물 구성과 위계적 상호작용도 있다. 주요 인물들의 청춘 서사 속 역할 분담은 고토 히토리는 고립된 괴짜, 사회부적응자이다. 이지치 니지카는 사교적 리더, 중심 연결자이다. 야마다 료는 쿨한 예술가, 감성의 대체축이며 키타 이쿠요는 인싸, 밝음으로 기회의 기대치이다. 이 구도는 ‘밸런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모든 역할은 사회적 위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히토리는 무대 뒤에서 웃음을 주는 구조 속 ‘개그 캐릭터’로 고정되었고키타와 니지카는 사회성이 강조된 이상적 모델로 그려졌다. 이건 곧 “다양성”이라는 이름의 역할 고정,

“이런 타입이 모이면 사회적 청춘 완성”이라는 표준화된 인간상의 은폐가 된다.

《봇치 더 락!》은 그 자체로는 ‘치유의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오늘날의 청년들이 어떻게고립되고, 어떻게 자기 자신을 ‘시장에 팔리는 존재’로 만들도록 강요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무의식적 사회구조의 투영이다.


결론

무의식적인 반영은 작품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작품이 시대를 반영하는 방식의 한 단면이다. 독자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작품이 반영하는 사회의 무의식과 마주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무의식의 작동을 파고드는 작업이 단순한 비평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자로서의 저항이자, 성찰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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